가을볕이 너무 좋아/ 고추를 따서 말린다// 흙마당에 널어놓은/ 빨간 고추는/ 물기를 여의며 투명한/ 속을 비추고// 높푸른 하늘에 내걸린/ 빨래가/ 바람에 몸 흔들어/ 눈 부시다// 가을볕이 너무 좋아/ 가만히 나를 말린다// 내 슬픔을/ 상처난 내 욕망을// 투명하게 드러나는/ 살아온 날들을.…… ‘가을볕’전문(박노해)

3일 후면 가을이 깃드는 처서(處暑)다. 바람도 선선해져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고 했다.

처서 기간에 했던 중요한 일 중의 하나가 책에 대한 포쇄였다. 포쇄는 바람을 쏘이고 햇볕에 말린다는 뜻이다. <농가월령가> 7월령에는 “장마를 겪었으니 집안을 돌아보아 곡식도 거풍(擧風)하고, 의복도 포쇄하소”라는 대목이 나온다.

冊(책)은 대쪽에다가 글을 써서 가죽끈으로 묶은 모양을 본뜬 글자다. 옛날에는 책이 대단히 귀했다. 책 한권이 생기면 온 마을 사람들이 돌려 읽었다. 저녁에는 안방에 모여 앉아 책 읽는 것을 듣기도 했다. 더러는 책을 베껴서 읽기도 했다. 이것이 ‘필사본’이다. 베끼다가 실수로 다르게 적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의도적으로 줄거리를 바꾸기도 했다. 이 것을 ‘이본(異本)’이라고 한다.

▲ 전주사고 포쇄 재현 행사.

당시의 책은 한지로 된 고서(古書)였다. 고서는 활자본이 귀한데, 이 활자도 목활자와 동활자가 있었다. 구리로 만든 동활자로 찍은 계미자(癸未字)(1403)가 현재 남아 전하는 최고(最古)의 활자다. 고서의 문집은 대체로 10행에 20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것이 200자 원고지의 기준이 되기도 했다.

책은 매우 귀했기 때문에 옛날부터 책 관리에 많은 신경을 썼다. 그 중의 하나가 폭서(曝書) 또는 포쇄라는 행사였다. 고서는 한지로 돼 있어서 습기에 약했다. 그래서 1년에 한두 차례씩 습기를 제거해줘야 했다.

어느 선비가 술이 거나해져서 배를 드러내고 맨바닥에 드러누웠다. 선비로서 체통을 잃은 것이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그러자 선비가 “나는 지금 포쇄 중이네. 내 뱃속에 시(詩)가 수천 수 들어 있는데 이를 말려야 해”라고 했다고 한다. 김경수 교수가 쓴 <한자문화 이야기>에서 나온 이야기다.

책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록이었다. 그래서 나라에서는 책을 잘 보존하기 위해 사고(史庫)를 짓고 이를 관리하는 당상관을 두었다.

질긴 가죽으로 된 책이 세번이나 닳아 끊어지도록 책을 읽은 사람이 있다. 바로 공자다. 이를 위편삼절(韋編三絶)이라고 한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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