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太和江百里:19. 천전리 각석(중)

▲ 천전리 각석의 명문은 마치 책 두 쪽을 펼쳐 놓은 것처럼 글자가 적혀 있다. 오른쪽은 원명(原銘)이고 왼쪽은 추명(追銘)이다. 오른쪽 원명을 읽어보고 이어 왼쪽 추명을 읽어보면 두 페이지의 스토리가 연결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신라 왕족들이 직접 찾아올만큼
아름다운 풍경 자랑했던 천전리
525년, 을사년에 새긴 오른쪽 원명
14년 뒤 새겨진 왼쪽의 추명에는
방문자와 일시까지 기록돼있어

천전리 각석(국보 제147호)에는 청동기 시대부터 신라 말까지의 많은 그림과 글씨가 새겨져 있다. 그 내용 중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바위 중간 부분 아래쪽에 있는 명문(銘文)이다. 을사명(原銘·525년)과 기미명(追銘·539년)이 바로 그것이다. 을사명은 1988년 울진 봉평리 신라비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가장 오래된 신라 시대의 명문이었다.

▲ 원명(原銘)은 갈문왕이 어사추여랑과 함께 천전리 각석에 놀러 온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책 두쪽을 펼쳐 놓은 듯한 명문(銘文)

천전리 각석의 명문(銘文)은 마치 책을 펼쳐 놓은 모양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먼저 새긴 것이라 하여 ‘원명(原銘)’이라 불리며 새긴 연도는 525년(법흥왕 12)이다. 원명은 을사년에 새겨졌다 해서 ‘을사명’이라고도 불린다.

그 왼쪽은 뒤에 새긴 것이라 하여 ‘추명(追銘)’으로 불린다. 추명은 14년 뒤인 539년에 새겨졌으며, 기미년에 새겨졌으므로 기미명이라고도 불린다.

연구자들의 해석을 종합하면 525년(법흥왕 12)에 사부지 갈문왕(徙夫知 葛文王)이 어사추여랑(於史鄒女郞)과 수행원을 거느리고 천전리 계곡을 찾아왔다. 천전리 골짜기는 본래 이름이 없었는데 ‘서석곡(書石谷)’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14년 뒤 539년(법흥왕 26)에는 사부지 갈문왕의 부인인 지몰시혜비(只沒尸兮妃)와 무즉지태왕비 부걸지비(夫乞支妃), 사부지왕자랑 심맥부지(心麥夫智)가 수행원을 거느리고 방문했다. 부걸지비는 법흥왕비이며, 심맥부지는 진흥왕이다.

두 번에 걸친 신라 왕족의 천전리 행차는 그 주인공과 정확한 날짜까지 알 수 있어 흥미롭다. 방문 날짜는 525년(법흥왕 12)은 6월18일 새벽이었고, 539년(법흥왕 26)은 7월3일이었다. 찾아온 계절은 모두 여름이었다. 천전리 각석이 있는 곳은 지금도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지만 신라시대에 왕족이 찾을 정도로 경치가 빼어난 곳이었다.

▲ 추명(追銘)은 갈문왕의 왕비 지몰시혜비가 갈문왕을 그리며 법흥왕비인 부걸지비(친정 어머니), 그리고 아들 심맥부지(훗날 진흥왕)와 함께 천전리 계곡에 왔음을 기록하고 있다.

◇천전리 명문 해설

원명(原銘)은 법흥왕의 동생인 사부지 갈문왕이 벗으로 사귀는 ‘어사추녀랑’이라는 누이와 천전리 계곡에 함께 왔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추명(追銘)은 법흥왕의 딸이자 사부지 갈문왕의 아내가 된 지몰시혜비가 이미 사망한 사부지 갈문왕을 애달피 그리워하며 법흥왕비(부걸지비)인 친정 어머니를 모시고 여섯 살 된 어린 아들(심맥부지)과 함께 남편의 흔적이 남아 있는 천전리 계곡에 왔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법흥왕은 정실 왕비에서 태어난 아들이 없었다. 때문에 사부지 갈문왕은 왕가의 혈통을 잇기 위해 사랑하는 누이(어사추여랑)와 결혼하지 못하고 법흥왕의 딸과 정략결혼을 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사부지 갈문왕은 왕이 되지 못한 채 법흥왕보다 먼저 죽었다.

반면 6살에 어머니(지몰시혜비)의 손에 이끌려 천전리 계곡에 왔던 법흥왕의 외손자이자 사부지 갈문왕의 아들이었던 심맥부지는 그 이듬해인 7살에 왕이 되는데 그가 바로 진흥왕이다.

글·사진=이재명 논설위원 참조=<대곡천 문화사와 2019년 울산대곡박물관> <반구대 선사마을 이야기>

명문(銘文)의 주요 부분

◇을사명(原銘·525년)
을사년에 사탁부의 갈문왕이 놀러와서 처음으로 골짜기를 보았다.
오래된 골짜기인데도 이름이 없는 골짜기였다.
좋은 돌을 얻어 글을 쓰고 서석곡이라 이름하고 글자를 새겼다.
함께 논 벗은 매(妹)인, 아름다운 덕을 지닌 밝고 신묘한 어사추여랑님이다.

◇기미명(追銘·539년)
지난 을사년 6월18일 새벽 사탁부의 사부지 갈문왕과 매(妹)인 어사추여랑님이 함께 놀러온 이후 △년8사년(巳年)이 지나갔다.
매왕(妹王)을 생각하니 매왕은 죽은 사람이다. 정사년(537)에는 (사부지)왕이 죽었다.
그 왕비인 지몰시혜비가 (사부지)왕을 사랑하고 그리워하셔 기미년 7월3일 (갈문)왕과 매가 함께 보았던 서석을 보러 계곡에 왔다.
이 때 함께 셋이 왔는데, 무즉지태왕비 부걸지비와 사부지왕자인 심맥부지가 함께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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