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범상 울산대 명예교수·실용음악도

현장서 땀 흘리며 기술향상 힘쓰고
전체과정 소통으로 협업함 없이는
조선업의 앞날은 기대하기 어려워
젊은이들이 거친 바다에서 합심해
노 저을 마음이 있어야 미래도 있어

몇 달 전, 대통령은 기업인들 앞에서 일감이 없어 허덕이고 있는 조선해양산업의 수주상황이 약간의 호전기미를 보이자, ‘물들어올 때 노를 젓자’는 말로써 국민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 바 있다. 오랜 기간 대한민국의 경제를 밑받침해 온 조선 산업이 사실상 긴 침체기에 들어가자, 그 중심지인 울산과 거제의 경기는 눈에 띄게 곤두박질치고 있다. 타지로의 인구유출도 멈출 줄 모른다. 조선(造船)을 통해 나라를 세운다는 박정희 대통령의 1972년 조선입국(造船立國) 선언 시점부터 조선 산업이 급한 하락기를 맞은 2016년까지 40여년에 걸쳐 조선해양공학을 배우고 가르치며 조선인재를 키워온 사람으로서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을 느낀다. 지금으로선 글로벌 해운경기의 부활을 기대할 뿐이다. 그렇다면 해운경기만 살아나면 과연 국내조선해양산업은 자연스레 재도약하고 롱런할 수 있을 것인가?

여타 제조업과 마찬가지로 조선 산업도 인사관리를 별개로 하면, 영업, 설계, 생산의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선박이나 해양구조물 등을 수주하는 오너(Owner)측의 전문지식수준이 높아지고 요구조건도 점점 까다로워지면서, 이에 대응하는 조선소 영업맨들의 지식고도화 필요성은 말할 나위도 없이 중요하다. 이 영업경쟁력은 당연히 설계능력, 생산능력 그리고 가격경쟁력에서 나온다. 일본의 경우는 벌써 20여 년 전부터 조선소간 통합과 인적, 물적 구조조정을 지속적으로 진행한 외에, 덤핑제거, 원가절감 그리고 상대적으로 우수한 조선소의 기술력을 활용하는 등 다양한 시너지획득 작전을 펴나가면서 존립을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조선소도 살아남기 위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본디 기술에는 설계기술과 생산기술이 있다. 설계기술이란 인간이 두뇌를 가동하여 생산품의 다기능화, 고효율화, 고지능화, 초소형화, 복잡구조배치 등을 구현하기 위한 창조적 아이디어와 그 결과물을 말한다. 생산기술이란 크레인, 로봇, 자동용접 등의 자동화를 통해 적은 인력과 시간으로 다량의 고 정밀 생산품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말한다. 컴퓨터와 각종 소프트웨어, IT 등 주변지식은 조선설계·생산기술향상을 돕는 역할을 한다. 한편 국내 조선소에선 오랜 기간 생산기술력을 전체기술력으로 인식하는 우(愚)를 범해 왔던 게 사실이다. 예를 들어 한국과 일본에서 같은 시간동안 같은 양의 일을 하는데 소요되는 인력이 10명 대 11명이라면 기술력에서 우리가 일본을 추월했다고 인식해 왔던 것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설계기술이 아니라 생산기술에서 그렇다는 것임을 깨달은 것은 사실상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니다.

설계기술이 부족하면 외국산 도면해석에 문제도 발생할 수도 있으며, 복잡구조물의 시공순서가 뒤틀린 나머지 이미 만들었던 부분을 다시 해체하고 재시공하는 등의 출혈을 경험할 수도 있다. 설계기술력을 확보하는 데는 많은 기본지식, 전문지식, 경험, 새로운 지식, 미래예측력, 그리고 시간이 필요하다. 나아가 뛰어난 설계기술력은 침체된 글로벌 해양산업, 해운경기를 새롭게 창출할 수도 있다. 좋은 자동차가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듯이. 그런데 이 설계기술력을 조선소마다 독자적으로 확보하는 것은 힘들기도 하고 과잉투자적인 측면도 있다. 그런 점에서 상대적으로 생산기술력이 강한 회사와 설계기술력이 강한 회사가 통합한다면 매우 긍정적인 시너지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조선소간의 통합은 조선해양산업의 재도약에 긍정적인 요소임에 틀림없다.

한편 조선소 인력의 마인드 변화가 도약의 장해요소가 되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배는 만든다(making)고 하지 않고, 짓는다(building)고 한다. 조선해양산업은 흘러가는 벨트 위에서 자기 할 일만 반복하는 조립과정을 통해 똑같은 제품을 다량생산해내는 제조형태가 아니다. 수많은 연관회사와 사람들이 긴 시간동안 협동·협업해서 특별한 한 개의 제품을 짓는다는 특징을 갖는다. 관련학자들이 이제는 조선해양산업이 기술집약산업, 적어도 기술융합산업으로 변했다고 아무리 주장해도 노동집약적 속성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조선해양산업 인력에게는 일에 대한 애착과 사명감은 물론 심지어는 애국심이라는 20세기적 시대정신마저 요구되는 것이다.

고(故) 정주영회장이 ‘나라가 잘되는 길이 내가 잘되는 길이요, 내가 잘되는 길이 나라가 잘되는 길이다’라고 강조했던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프로펠러의 기본설계자가 그 다음 단계인 모형실험, 상세설계, 생산설계 이어서 제품화된 후 이를 엔진축계(軸系)에 연결될 때까지 관심과 애정을 갖는 것은 조선인(造船人)의 기본정신이다. 만일 기본설계담당자가 ‘상세설계 단계로 넘어갔으니 이젠 나의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한다면 조선의 미래는 없다. 외국유명회사 설계엔지니어에게서 들은 얘기다. 자기회사가 국내조선소에 이전(移轉)한 도면에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생기면, 해당 조선소의 담당부서에서 질문이 오는데 예전엔 한번 설명해주면 더 이상 질문이 안 왔단다. 사내에서 그 답변을 모두 공유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하루 걸러 이 부서 저 부서에서 같은 질문이 온단다. 개인주의, 소통부족, 비협업 마인드가 팽배한 현실을 아프게 대변한다. 생각해보자. 요즘 젊은이들의 정신과 태도는 어떤가. 혼밥, 혼폰, 혼놀, 대리석, 에어컨, 인터넷, SNS, 워라밸… 아닌가? 두뇌 대신 손으로 인터넷만 뒤지는 습관만으로 기술향상은 기대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현장에서 땀 흘리고 소통하며 협업함 없이 조선업의 앞날 역시 기대할 수 없다. 독신자기숙사의 방마다 전등이 밤새 켜져 있는 이유가 근무 중 얽힌 문제를 머리 모아 풀기보다 공무원시험공부하기 위함이란 말이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지금의 젊은이들이 거친 바다에서 합심해서 노를 저을 마음이 있어야 우리나라 조선해양의 미래가 있는 것이다. 윤범상 울산대 명예교수·실용음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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