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우화 ‘당랑박선(螳螂搏蟬)처럼
눈앞의 이익에 빠져 위기를 인지 못하면
큰일을 그르칠 수 있음을 항상 경계해야

▲ 곽해용 국회 비상계획관(이사관)

수컷만 운다는 매미의 울음소리가 꽤 요란하다. 그 작은 덩치에 공사장 소음(65 데시벨) 보다 높은 70~80 데시벨(dB)이다. 7년을 애벌레로 버티다가 겨우 열흘 정도 산다고 한다. 울음소리가 큰 매미가 짝짓기를 더 많이 한다니 크게 울 수밖에 없기도 하겠다. 매미나 인간이나 찰나 같은 일생 속에서 나름대로 죽을힘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주어진 숙명이 아닐까 싶다.

긴 기다림 짧은 일생이라 더 악착같은 매미 울음소리에 입추(立秋)와 처서(處暑)도 이미 지났다. 가을 문턱이다. 올해도 헛헛하게 흘러간다. 우리는 가끔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힘들고 한치 앞조차 보이지 않는 곤란한 상황에 맞닿았을 때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될 거야”라고 스스로 위로한다. 아니, 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솝우화 중에 ‘배부른 여우’도 그런 이야기다.

굶주린 여우 한 마리가 큰 참나무의 뚫린 구멍 속에서 양치기가 먹다가 남겨둔 음식을 발견했다. 좁은 구멍으로 간신히 기어들어가 거기 있던 빵과 고기를 모두 먹어치웠다.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은 탓에 배가 불러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다. 울면서 신세 한탄하는 그 여우를 보며 지나가는 다른 여우가 하는 말, “기다려라. 처음 구멍 속에 들어갔을 때처럼 배가 홀쭉할 때까지.”

이처럼 시간은 약이 되기도 한다. 헤어진 연인도 바로 잊고 새로운 사랑을 하게 만든다. 청춘을 다 바친 회사에서 승진도 못하고 쫓기듯 퇴직할 때는 누군가를 평생 원망할 것처럼 억울해하여도 막상 그럭저럭 잊고 살아간다. 물론 상처가 덧나기도 한다. 상처 없는 새가 어디 있으랴. ‘상처 없는 새는 이 세상에 나자마자 죽은 새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기다림과 인내가 없었다면 어찌 한 송이 꽃 인들 탄생할 수 있을까.

그런데 시간이 지난다고 반드시 모든 게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장자(莊子)의 우화 중에 ‘당랑박선(螳螂搏蟬)’이라는 스토리가 있다. 어느 날 밤나무 숲을 지나던 장자 앞으로 까치 한 마리가 주위도 살피지 않고 재빠르게 날아갔다. 장자가 활을 쏘려다 보니 까치의 목표가 있었다. 사마귀(螳螂)였다. 그런데 더 자세히 보니 그 사마귀는 매미(蟬)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짝을 찾느라 정신없이 울어대던 그 매미였다. 일련의 사태를 목격한 장자는 위기를 느껴 도망친다. 그러나 결국 숲지기에게 밤을 따가려는 도둑으로 몰려 혼줄이 났다는 이야기다.

눈앞의 이익에만 빠져 근본을 잊는다면, 다가오는 위험을 미처 인지하지 못해 큰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하는 메시지다. 자칫 시간만 기다리다가는 내가 죽게 생겼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무조건적인 낙관주의가 그래서 더 위험하다. 현실을 제대로 살펴야 한다. 구멍 속에 갇힌 여우도 또 다른 위기에 대비해야 할지 모른다. 사업에 실패한 개인파산자도 각고의 노력으로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다시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건강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다면 또 다른 낭패를 보는 경우가 그러하리라. 돌아보니 조직생활에서 필자도 그간 ‘나만 잘하면 되겠지. 시간이 지나면 모두 잘 될 거야’하는 안이함으로 실수가 더러 있었다. 전체를 통찰하는 혜안이 좀 부족했던 것 같다.

제대로 주변을 돌아봐야겠다. 지인과 만나는 소중한 시간에도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고 별로 긴박하지 않은 휴대폰 문자 응신에 집중하고 있는지. 매미처럼 자기 짝만 찾아대는 사이에 사마귀와 까치, 포수가 겹겹이 노리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지. 사실 위기를 바로 인지하는 것도 대단한 능력이다. 자! 이젠 그만 징징 울어대고, 위기를 위기로 바로 알아채지 못하는 그 위기로부터 우선 빨리 벗어나 볼까. 곽해용 국회 비상계획관(이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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