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분방한 문화놀이터가 된 미술관은
줄세우기 강요하는 수직적 사고 깨부숴
울산시립미술관도 다양성 체득공간이길

▲ 정명숙 논설실장

외국을 여행할 때면 으레 미술관(박물관)을 방문한다. 미술작품은 물론이고 미술관 건물과 실내 구조를 보는 것도 즐겁다. 그 중 한번쯤은 꼭 미술관 내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데 그게 또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잘 지어진 건축물, 고상한 실내, 정중한 서비스, 맛있는 음식, 그리고 방금 본 감동적인 그림의 여운까지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는 만족스런 식사시간이 보장된다. 사람의 생각이 다 비슷한 듯 이름난 미술관의 식당은 언제나 손님이 그득하다.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들로 보이는 그들은 거기서 오랜시간 대화를 나누며 천천히 식사를 즐긴다. 어쨌든 ‘나의 미술관 식사’는 여행의 만족도와 가치를 높여주는 중요한 요소로 오랫동안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가끔은 미술관을 들렀음에도 일정상 ‘미술관에서의 식사’를 못할 때가 있다. 그건 내게 있어 2% 부족한, 아쉬운 여행이 된다. 얼마전 여행이 그랬다.

프랑크푸르트, 뮌헨을 거쳐 런던으로 이어지는 여행에서 미술관과 박물관을 여러차례 방문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미술관 내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을 여유가 없었다. 뭔가 중요한 하나를 놓친 듯 못내 아쉬웠으나 다행히 시간이 지날수록 식사 이상의 충만감을 주는 경험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다름아닌 테이트모던의 입구 로비의 콘크리트 바닥에 아무 생각없이 드러누워 있었던 몇십분의 경험이 그것이다. 테이트모던은 뱅크사이드발전소를 개조해 2000년 5월 개관한 미술관이다. 그 중 큰 발전실을 개조한 로비는 7층 높이에 바닥면적이 3400㎡에 이르는 툭 트인 공간으로, 경사진 매끈한 콘크리트 바닥에 앉거나 심지어 드러누워 있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종종 아이들이 장난을 치며 그 사이를 뛰어다니기도 한다. 우리나라 미술관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풍경 속의 일부가 됐던 그 순간이 ‘미술관에서의 식사’ 이상으로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드디어 울산시립미술관을 짓는다. 오는 29일 오후 4시에 기공식이 열린다. 2012년 9월13일 울산초등학교 부지에 미술관을 건립하기로 한 이후 착공까지 꼬박 7년이 걸렸다. 문화재 출토 때문에 연기되고, 그로인해 중부도서관 부지로 옮겨 짓기로 확정하고도 민선 7기 출범과 함께 또다시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비로소 역사적인 착공이다.

미술관은 울산 역사의 새로운 시작이다. 예술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1996년 문화예술회관이 개관하면서 우리가 다른 세상을 살 수 있었던 것처럼, 단순히 문화공간 하나가 더 생기는 것에 머물 일은 아니다. 문예회관 이전의 우리는 일년에 한두번 종하체육관에서 접하던 음악회가 전부였다. 공간­윤­우성 등 사설화랑들이 차례로 생겼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변변한 전시회 하나 볼 수 없었다. 그로부터 25년만인 2022년 대형 공립미술관이 개관한다. 우리는 또 어떤 변화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의 삶은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 사뭇 설렌다.

윈스턴 처칠은 1960년 타임지와 회견에서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그 건축이 다시 우리를 만든다’고 했다. 특히 도시의 미술관은 시민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사방에 입구를 둔 열린 공간인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은 시민들의 공동체문화를 만드는 광장이다. 의외의 기획전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는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은 시대의 흐름과 미래산업을 예언한다. 테이트모던은 런던시민들의 자유분방한 문화놀이터이다. 아마도 미술관에서 먹고 마시고 놀면서 세계적인 수준의 작품을 부담 없이 즐기며 다양성을 체득한 그들은 결코 ‘조국의 딸’을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미술관은, 교과목마저 줄을 세워놓고 똑같은 목표를 향해 일제히 달리기를 강요하는 우리의 수직적 사고를 부수는 공간이다. 그곳에서 ‘새로운 울산’을 시작해야 한다. 정명숙 논설실장 ulsan1@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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