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정문 전 울산강남교육장

우리는 현재 위기를 맞고 있다. 국가안보가 그렇고 일본의 경제보복이 그렇다. 등산객들이 험준한 산을 오를 때 8부능선 지점이 가장 중요하고 위험하다고 한다. 우리는 지금껏 숱한 대가를 치르면서 한강의 기적을 이뤘고 IMF를 극복하며 8부 능선까지 왔다. 어찌 여기서 멈출 수 있겠는가.

한국이 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잘 치러내자 놀란 일본은 ‘한국이 일본을 앞지른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다음해 조사단이 한국에 머물면서 한국의 실정을 조사했다고 한다. 보고서 내용은 ‘한국은 일본을 따라올 수 없으니 안심해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 결론을 내리게 된 내용은 세 가지 측면에서이다.

첫 번째 인구 면에서 일본을 따라올 수 없다는 것이다. 당시 일본의 인구는 1억2600만명인데 한국의 인구는 4300만명으로 한 나라가 자체 발전을 효율적으로 이끄는 데는 인구가 1억이 넘어야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가 한국의 경우는 너무 보잘것 없다는 것이다. 조사하던 해를 기준으로 한국 정부가 각 대학에 지원하는 과학기술 연구비가 185억원이었다. 같은 해 일본은 도쿄대학에만 지원하는 연구비만 800억원이 넘었고 일본은 그동안 노벨상도 7명이나 수상했다.

세 번째로 한국은 노동운동의 질이 좋지 않다고 판단했다. 대체로 노동운동은 두 가지 흐름이 있다. 한 가지는 관노사(官勞社) 3자가 협의해 노동조건을 향상시켜 나가는 흐름이다. 그리고 또 다른 방식은 노동자가 결집해 사용자에 대해 투쟁하는 형식이다.

한국은 노조가 투쟁일변도로 나가게 되면 노동자의 요구조건을 수용하게 돼 임금상승이 뒤따르게 되고 임금이 상승되면 물건 값이 오르고 결국 국제경쟁력이 떨어지는 악순환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일본은 한국이 일본을 앞지를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에서 안심했다고 한다.

“본 것은 본대로 보고하라. 들은 것은 들은 대로 보고하라. 본 것과 들은 것은 구별해서 보고하라. 보이지 않은 것과 듣지 않은 것은 일언반구도 보고하지 마라.” 이순신 장군이 부하장졸들에게 가장 엄하게 지시한 정보지침이다. 이순신 장군의 해전승리 요인이 여러 가지 있지만 그 중의 하나가 철두철미한 적의 정보관리였다. 손자의 병서를 보면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다’는 말이 있다.

이번 경제보복 위기를 통해 일본이 우리보다 앞선 부문이 어떤 점인가 또 우리가 부족한 것은 어떤 점인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일본을 능가하려면 일본인 세 사람이 할 일을 우리는 한 사람이 해내는 투지와 각오가 있어야 한다.

기초과학 분야의 예산도 증액 지원하고 교육도 하향평준화보다 창의성이 뛰어난 인재 육성에 매달려야 한다. 현재 일본은 노벨상 수상자가 26명이나 된다.

모두 패자만 남는 노사갈등의 투쟁파업도 노사가 상생할 수 있는 건전한 노동운동으로 바꿔야 한다. 그래야 미래가 보장되고 다른 나라에 뒤지지 않는 국력이 생기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격변과 각축의 시대에 살고 있다. 힘이 없으면 죽는다는 밀림의 법칙인 약육강식만이 통하는 시대다. 일류국가 일류기업 일류제품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다. 우리는 정신을 차려야 살아남는다. 남이 보면 불가능한 것이 자명한데 자기만 가능하다고 믿는 꿈을 망상(妄想)이라 한다.

요즘 우리 사회에 이렇게 망상을 실상으로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우리는 망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우리는 이번 위기를 기회로 삼는 국민의 총화와 지혜를 모우는 일이 시급하다. 이번이 우리에게 온 마지막 기회이다. 고지가 저긴데 8부 능선에서 주저앉을 수 없지 않는가. 윤정문 전 울산강남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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