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일반시민 격의없는 토론
태화강 국제설치미술제 즈음해
문화와 어우러지는 정치축제를

▲ 현숙희 무용가 전 영산대 초빙교수

얼마 전 신문에서 ‘울산학생 대토론축제’가 열렸다는 소식을 접했다. 울산광역시 교육청 외솔회의실에서 개최되었는데 15명의 퍼실리테이터 교사가 각조별 7명의 학생과 함께 토론에 참여했다. 찬성과 반대를 나누어 서로 대립하는 디베이트(Debate) 방식의 토론이 아닌 각자 자신의 의견을 말한 후 여러 의견들 중에서 실현가능성이 높거나 공감이 많이 가는 의견을 뽑아보는 토의(Discussion)의 형식으로 진행됐다. 주 진행자가 주제 및 주제별 활동을 안내하고 제한시간을 알려주면 각 조의 진행을 맡은 퍼실리테이터 교사가 학생들의 이야기를 정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주제에 따른 다양하고 참신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사전 준비정도나 배경지식에 따라 의견의 구체성과 정교성의 차이는 보였으나 모두가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는데는 이견이 없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학생들은 토론을 통해 학교라는 사회의 시민으로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며 성장하는 면모를 나타낸 것이다.

이미 지나간 ‘울산학생 대토론축제’를 되새기는 이유는 이런 토론축제를 경험하면서 자란 학생들이 성인이 될 즈음엔 우리 정치도 달라질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적어도 고성과 막말이 난무하는 국회,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는 ‘정치꾼’들의 난장판을 접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문득 머릿속에 접혀져 있던, 언젠가 읽은 북유럽 정치축제가 더 올랐다.

정치축제의 원조는 스웨덴의 ‘알메달렌 위크’(Almedalen Week)다. 알메달렌은 휴양섬 고틀란드(Gotland)섬의 비스뷔(Visby)라는 도시에 위치한 공원이름이다. 1968년 당시 스웨덴의 유력 정치인이었던 올로프 팔메가 휴가차 고틀란섬을 방문했다가 공원에서 주민들과 정치적 토론을 나누고 연설을 한 것이 언론에 소개돼 화제가 됐는데 1969년 총리가 된 후 해마다 이 공원에서 정책 연설회를 가졌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정부정책설명회로 규모가 커졌고 1975년부터 정당이 참여하기 시작하더니 1991년부터는 의회의석을 차지한 모든 정당이 참여했다.

2017년 공식집계에 따르면 1890여개의 단체가 참여했고 약 4만명이 그 섬을 방문했다. 7~8개의 정당이 하루씩 돌아가며 이벤트를 맡아 진행하기 때문에 알메달렌 위크라고 부르게 됐다. 알메달렌 위크를 주최하는 것은 정당들이지만 박람회는 절대 정책 홍보와 표심을 모으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으며 모든 프로그램과 지향점은 시민들과의 소통에 맞춰져 있다. 자기 조직의 주장을 알리고 싶은 사람들은 부스를 차려놓고 홍보를 하고 정치인들은 연설을 하거나 사람들과 토론을 벌인다. ‘정치쇼를 위한 파티장’이라는 비판도 없지 않지만 부러운 정치축제 문화다.

덴마크에는 ‘폴케뫼데’라는 정치축제가 있다. 알메달렌 위크를 모델로 삼았으나 보다 어우러지는 축제를 지향한다. 자치단체가 보른홀름(Bornholm)섬 홍보 방안을 마련하던 중, 다양한 정치토론의 장이 열리면 일반 시민들이 정치인과 대화하고 싶어서라도 많이 찾게될 것이라는 예상이 적중한 것이다. 이 축제에서는 누구나 그리고 어느 곳에서나 토론의 사회자가 낸 주제로 토론을 한다. 토론에 참여한 그 누구도 상대를 적대시하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고 서로 협력을 도모하기 위한 자리임을 잊지 않는다.

특히 사람들은 어떠한 주제를 가지고 토론함에 있어 그 과정 자체를 미래를 위한 소통의 장으로 인식한다. 때문에 이 과정에서 현안과 정책에 대한 타협점과 합의점이 자연스레 도출되며 이는 또한 정치에 대한 신뢰를 높여준다. 상호 신뢰가 기반이 되니 정치는 그들에게 과제가 아닌 축제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정치도 언젠가는 축제가 될 수 있을까. 태화강 국가정원이 지정됐고 울산시는 십리대밭을 백리대밭으로 확대한다고 한다. 전국적 주목을 끌고 있는 태화강 국가정원에서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가 열리는 그날을 전후로 문화와 어우러진 정치축제 한번 열어보면 어떨까라는 간절한 소원 하나 세워본다.

현숙희 무용가 전 영산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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