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천석 울산 동구청장

지난 8월8일이 입추(立秋)였고, 말복이 8월11일이었다. 왜 가을이 시작된다는 입추가 한여름에 있을까. 또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立春)은 왜 겨울 한가운데 있을까? 음(陰)과 양(陽)은 같이 있고, 고락(苦樂)은 함께 하기 마련이라는 삶의 이치를 자연의 순리를 통해 말해 주는 것일까? 어느새 극심한 폭염이 한풀 수그러들고 바람 끝이 선선하다. 지난 여름에는 한낮 햇살이 정말 쨍쨍했다. 여름에는 뭐니뭐니해도 시원한 물놀이가 최고다. 그런 면에서 꽃바위에서 주전까지 3면이 바다인 울산 동구는 최적의 피서지였던 셈이다.

여름이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예닐곱 살쯤인가, 엄마 손에 끌려 바닷가에 갔던 거 같다. 세상에서 가장 큰 ‘고무 다라이’에 물이 넘칠 듯 가득 담겨서 조그만 나를 삼킬 듯이 넘실대는 것이 아닌가. 지금도 그 벅찬 두려움을 잊을 수가 없다. 또 한 날에는 아마 지금의 일산진 입구, 일산해수욕장 광장 어디쯤에 앉아서 꼬마의 눈높이로 다가온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 본 적도 있다. 끝없는 수평선이 펼쳐진 바다를 보았을 때 내게 다가왔던 그 충격은 아직도 아른거린다.

‘내가 어린 시절에 바다를 보았던 그때 그 감격과 충격을 지금의 우리 어린이들에게도 맛보게 하자’ ‘우리 어린이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큰 수족관을 선물해서 놀게 하자’는 생각을 늘 해왔다. 울산지역 구·군 대부분이 여름이면 지역주민을 위한 물놀이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10년전 만해도 기초자치단체가 물놀이장을 직접 운영하는 경우는 없었다. 울산에서 지자체가 운영하는 여름 물놀이장의 원조는 바로 동구 주전물놀이장이다. 주전해변은 주변 경관이 수려한데다, 모래사장 대신 작고 둥근 몽돌자갈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아 해마다 피서객으로 북적이는 곳이다. 그러나 수평선이 시원하게 펼쳐진 해변 경관과는 달리, 급작스럽게 수심이 깊어지는데다 한여름철에도 종종 냉수대가 발생해 물이 차가운 편이기 때문에 해수욕을 하기에는 아쉽다는 불만이 있었다.

이런 점을 개선해 어린 자녀를 동반한 가족들도 안심하고 해수욕을 즐길 수 있도록 지난 2008년 7월 동구청에서 주전물놀이장을 선보였다. 바로 옆에 바다가 있는데 굳이 물놀이장을 설치할 필요가 있냐는 몇몇 반대의견을 설득하고, 직원들을 독려하며 물놀이장을 조성했다. 그해 여름, 햇볕에 뜨겁게 달구어진 몽돌자갈을 골라내고 커다란 풀장과 에어슬라이드 미끄럼틀을 설치하느라 우리 직원들이 굵은 땀을 흘렸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당시 주전물놀이장은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코발트블루의 동해안을 바라보며 물놀이를 즐기는 알뜰 피서지’로 각광받으며 하루 500여명 이상 방문했고, 올해까지 12년째 운영되면서 매년 7만명 이상이 찾고 있다. 주전물놀이장의 흥행 성공은 이후 주전마을이 지금과 같은 해양관광지로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이번 여름, 물놀이장 덕분에 사람들의 발길이 모였던 곳이 한 곳 더 있다. 바로 방어진 남진항이다. 지난 7월말부터 약 2주간 동구청이 남진항에서 운영한 남진 바다물놀이장은 해변에 물놀이시설을 갖춘 여느 곳과는 달리, 바다 위에 폰툰을 설치하고 미끄럼틀과 시소 등 다양한 물놀이 기구를 갖추었다. 파도가 세어 바다위 물놀이 시설이어서 위험하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개장하자마자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파도야말로 어린이에게 가장 신나는 ‘놀이기구’이기 때문이다. 바다를 몸으로 익히며 역동적으로 놀 수 있기 때문에 어린 아이보다는 초등학생 이상 청소년이 많이 찾았고, 어른 손님도 적잖았다. 특히 여름휴가가 집중된 8월 첫 주말에 깜짝 이벤트로 숭어·방어 맨손잡기 대회를 열었는데 홍보기간이 매우 짧았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 성황을 이루었다.

아쉽게도 태풍이 잇따라 3개나 찾아와 남진 바다물놀이장을 계획보다 빨리 폐장했지만, 2주 남짓한 짧은 기간에도 5000명 가까이 방문해 인근 상가나 음식점에서 반짝특수를 누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방어진 남진항과 꽃바위 일대가 관광지로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시도였다. 때론 참신한 아이디어 하나가 지역을 살리기도 한다. 남들이 하지 않는 것, 처음 시도하는 것들은 이목을 끌기 좋고 홍보효과도 크다. 어떻게 하면 동구에 많은 사람들이 계속 방문할 수 있을지, 어떤 새로운 즐길거리를 선보일지, 우리의 시도는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정천석 울산 동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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