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의 삶의 쉼표 ‘스탑오버’
반구대암각화 문화유산 등재땐
세계인이 함께 찾는 휴식처될것

▲ 정신택 남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오스트리아의 음악가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는 “만약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온다면 나는 바로 비엔나로 가겠다. 왜냐하면 비엔나에서는 모든 것이 20년 늦게 일어나니까….”라며, 당시 숨가쁘게 진행되는 20세기로의 변화를 거부하고 바로크시대에 머물기를 원했던 비엔나를 꼬집어 말했다.

여행을 좋아하는 필자는 몇해 전 아내와 함께 동유럽 자유여행 일정 중 오스트리아를 여행한 적이 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 잘츠부르크와 모차르트의 외가 장크트볼프강, 예술의 도시 비엔나를 돌아본 기억은 두고두고 우리 부부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봉인되어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비엔나가 왜 그토록 시대의 변화를 거부하며 당시에 머물기를 원했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필자처럼 스스로 설계하고 떠나는 자유여행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일단 목적지를 정하면 가장 중요한 항공편과 현지숙소를 예약하게된다. 이때 여행의 첫출발지로 가는 도중 중간경유지에서 체류할지 여부를 결정하게 되는데, 많은 항공사들이 자신들의 허브공항을 중간경유지로 정하고 있고 항공권을 예약할 때 중간경유지 공항 밖으로 나가 일정기간 체류 후 재탑승할 것을 신청할 수 있는데, 이렇게 허용되는 중간경유지 체류를 스탑오버(Stopover)라고 한다.

이러한 스탑오버를 활용하면 A도시→B도시, B도시→C도시로의 개별구간항공권을 끊을 때보다 훨씬 경제적이어서 매우 유용하다. 많은 항공사들이 여행구간 중 스탑오버의 횟수와 체류허용 조건을 정해놓고 있는데, 예약 과정에서 항공사의 중간경유지를 살피면 뜻밖의 보너스 여행기회와 본여행 전후의 쉼표로서 한 템포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필자가 동유럽 여행시 이용했던 루프트한자항공으로는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서, 북유럽 여행시 선택했던 러시아항공으로는 모스크바에서 스탑오버를 하며 첫 여행지 도착 전의 신선한 경험을 즐길 수 있었다.

필자가 생각하는 자유여행의 즐거움은 준비과정을 통해 현지에 대해 충분히 이해 하는 것, 그리고 현지에 도착해서 현지인처럼 다니고 먹고 생각하는 ‘현지인처럼 생활하기’에 있다. 이방인으로서 여행지를 스쳐가는 일반적인 패키지 여행과는 달리 스스로 설계하는 자유여행은 끝나고 돌아와서도 오랜 기억으로 남게된다.

필자의 경우, 비 오는 스톡홀름의 구시가지 뒷골목으로 찾아든 카페에서 아내와 건배한 생맥주라던지, 노르웨이 송네피요르드 도착지인 산악도시 플롬의 눈덮인 거대한 산들에 둘러싸인 게스트하우스 2층에서 끓여먹던 라면맛은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아서 살아가며 힘든 일을 겪을 때 극복할 수 있는 삶의 에너지원이 되고 있다.

요즘 마음처럼 여행을 못하고 있는 필자는 일상의 스탑오버를 울산대공원에서 발견한다. 팍팍한 일상을 잠시 잊고 푸른 녹음 속에 자신을 맡기면 지나온 시간의 피로의 치유와 다가올 시간의 에너지 충전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필자로서는 과거 울산대공원 조성 과정에서 대공원의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도입시설을 고민하며 실무책임자로서 10여년간 땀을 흘렸던 기억이, 지금의 성장한 울산대공원의 모습에 투영되며 자신의 자존감과 만족감을 스스로 채워주기 때문이다. 정해진 일상에서 벗어나 울산대공원 곳곳에서 잠시 자신만의 쉼표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서 필자가 오랜 세월 대공원의 마스터플랜을 수립하며 항상 염두에 두었던 것은, 산업도시의 분주한 생활 속에서 살아가는 울산시민들에게 평안한 휴식을 줄 수 있는 일상의 스탑오버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우리 모두는 삶의 쉼표, 스탑오버가 필요하다. 울산대공원을 거닐며, 태화강국가정원 대나무숲에서 사색하며, 장생포에서 고래바다여행선을 타고 푸른 바다를 만끽하며, 일상의 스탑오버를 찾자. 그리고 우리의 염원대로 대곡천계곡의 반구대암각화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다면, 그곳은 울산뿐 아니라 전국과 세계 각지에서 오는 수많은 방문객들의 스탑오버가 될 것이고 우리 자부심의 발원지가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만약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온다면 나는 바로 대곡천계곡으로 가겠다. 왜냐하면 대곡천 계곡에서는 모든 것이 1억년 이상 그대로니까….”라고 말하게 될지도 모른다. 정신택 남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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