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논설위원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도 묵묵히 8월을 넘기고 피는 꽃이 있다. 누구도 눈여겨 보지 않았던 여뀌와 고마리. 도저히 꽃이라고 말할 수 없는 잡것들이 한꺼번에 함성처럼 피면 비로소 9월이 온다.

그대/ 9월이 오면/ 9월의 강가에 나가/ 강물이 여물어 가는 소리를 듣는지요/ 뒤따르는 강물이/ 앞서가는 강물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면/ 앞서가는 강물이 알았다는 듯/ 한번 더 몸을 뒤척이며/ 물결로 출렁/ 걸음을 옮기는 것을/ 그때 강둑 위로/ 지아비가 끌고 지어미가 미는/ 손수레가/ 저무는 인간의 마음을 향해/ 가는 것을 (이하생략)……

‘9월이 오면’(안도현)
 

▲ 여뀌

고마리는 보통 강가나 개울가에 많이 자라는데, 번식력이 하도 좋아 ‘이제 고만 좀 번지라’는 뜻에서 ‘고만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필자가 어렸을 때 소를 몰고 가장 자주 갔던 데가 바로 집 근처의 고마리 군락지였다. 여름방학도 끝나고 먼 산까지 소먹이러 갈 수가 없었던 9월 초, 필자는 소가 가장 좋아하는 고마리 군락지 대여섯 군데를 알고 있었다. 앙증맞고 이쁜 고마리 꽃이 비로소 눈에 들어 온 것은 그로부터 수십년도 훨씬 더 지나서였다.

여뀌는 한자가 없었던 시절에도 백성들에게 친숙한 풀이었다. 한자로는 ‘蓼(요)’라고 표현하는데 그 뜻은 여전히 ‘여뀌’다. 역사적으로 여뀌가 유명한 곳은 전북 남원을 가로지르는 ‘요천(蓼川)’이다. 광한루 옆으로 흐르는 강의 여뀌꽃이 하도 아름다워 ‘요천’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최명희의 대하소설 <혼불>에도 요천이 등장한다. 이 책에는 ‘여뀌 꽃대 부러지는 소리’라는 표현이 나온다.

울산에도 여뀌가 많이 자랐던 장소가 있었다. 바로 포은 정몽주가 귀양살이를 했던 요도(蓼島)다. 요도는 고헌산에서 흘러내리는 감천과 가지산에서 흘러내리는 남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언양읍지는 요도에 대해 ‘언양현에서 일리 떨어진 어음리에 있고 보통원 아래 밭기슭 가운데 하나의 작은 언덕으로서 이수간(二水間)에 있기에 그렇게 부른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게 보면 감천과 남천이 합류하는 두 강가에는 여뀌가 많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잔서(殘暑)가 아직은 뜨거운 9월, 강가에 무리지어 발갛게 피어나는 여뀌를 자세히, 오랫동안 보면 비로소 꽃임을 알게 된다. 이제껏 보아왔던 잡것들이 꽃으로 변할 때 세상은 바뀐다. 포은도 그 유배지 거처의 가을 여뀌 군락을 헤치고 세상으로 나아갔으리라.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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