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들 이념·정파 초월해서
국가와 지역의 미래를 위한 길
고민·구성원 의견수렴 나서야

▲ 이기원 전 울산시 기획관리실장

노태우 전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 당선자 시절, 신문마다 거의 1면에 큰 사진이 보도된 적이 있었다. 대통령 당선자가 몸소 서류 가방을 들고 사무실에 출근한다는 설명과 함께.

노 전 대통령은 권위주의적 질서를 타파하기 위한 노력과 88올림픽의 성공적 개최, 공산권 국가들과의 외교관계 개선 등의 성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대통령 비서실과 경호실 직원들의 권위주의적 행태가 획기적으로 개선된 것은 문민정부인 김영삼 정부 시절부터다.

그리고 ‘위대한 보통사람들의 시대’라고 거창하게 내세웠지만 ‘보통사람들’에게 얼마나 ‘위대한 시대’가 되었는 지는 모두 잘 알 것이다.

금년 초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던 ‘대통령 집무실 광화문 이전’을 백지화하겠다는 뜻을 밝혔었다. 문 대통령은 대선 때 ‘광화문 대통령’을 내걸고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 정부청사로 이전하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이 공약은 처음부터 너무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대통령이 정부청사에서 근무하게 되면 청사가 바로 청와대가 되는 격인데 경호는 어떻게 하며 공무원들과 특히 정부청사를 이용하는 국민들의 불편은 얼마나 커질 지를 생각해 봤는가? 오죽하면 김대중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던 박지원 의원이 “청와대에서 살아보셨던 분이 어떻게 저런 공약을 하시나 했다”고 했을까. 정부 광화문시대준비위원회도 “대통령이 실무적 검토보다 이념으로 광화문 시대를 얘기했다”고 설명했다. 실현 가능성이 별로 없는데도 국민들에게 국민과 가까이서 소통하려는 노력을 보여 주려는 의도에서 제시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과 소통하려면 꼭 사무실을 광화문으로 이전해야 할까?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국정에 반영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문제지 사무실이 어디에 있든 무슨 문제이겠는가? 언론 매체와 국민청원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얼마든지 파악할 수 있다. 그러한 사항들을 정부에서 얼마나 전향적으로 검토하여 반영하거나 고충을 해결해 주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든지 너무 방어적 자세로만 사안을 검토해서는 안될 것이다. 어쨌든 늦게나마 이 공약에 대한 방침을 바꾼 것은 정말 다행스런 일이다.

한편, 지도자들이 주관하여 간담회 등의 명칭으로 대화의 시간을 갖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얼마 전 한·일관계가 악화일로에 있을 때 대통령이 국가원로들을 초청하여 의견을 청취한 것과 울산시장이 취임 1주년을 맞아 지역원로들을 초청하여 지역 발전을 위한 의견을 들었던 자리 등이야. 그런데 이러한 행사들의 성격을 꼼꼼히 들여다 보면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진정 가슴을 열고 참석자들 의견을 경청하여 정책에 적극 반영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하는 경우와 이와 반대로 그 자리에서 무슨 의견이 나오든 마이 웨이를 가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그런 행사를 가지는 것을 보여주는 데 의미를 두는 경우도 있다. ‘서로의 지혜를 모으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중국 속담처럼 어려운 때일수록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기관장들이 기자들을 대동해서 각종 이벤트를 만들어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려고 하는 경우도 많다. 조선시대 임금들은 조용히 민심을 살피기 위하여 미복잠행을 하기도 했는데 과연 어떤 것이 리더로서 바람직한 행동일까?

공자는 <논어> ‘위정(爲政)편’에서 “덕으로써 다스림은 마치 북극성이 제자리에 있는데 여러 별들이 이를 향한 것과 같다.” 법률로써 이끌고 형벌로써 다스린다면 백성들은 벌받는 일만 면하려고 할 것이며, 잘못을 하고도 부끄러워 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덕으로써 이끌고 예로써 다스린다면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스스로 바른 길에 이르게 된다고 했다.

지도자들이 이념이나 정파를 초월하여 진정 국가와 지역의 미래를 위한 길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면서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힘을 모아 나간다면, 굳이 거창한 구호를 내세우거나 유권자들 환심을 사기 위한 시도를 하지 않아도, 국민은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 일을 열심히 할 것이며 공동의 목표를 향한 길에도 기꺼이 동참할 것이다. 이기원 전 울산시 기획관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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