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주 ‘팔복예술공장’

▲ 전주제1공업단지 내 ‘썬전자’가 문을 닫은 뒤 27년간 폐건물로 방치됐다가 리모델링을 통해 2016년 문을 연 팔복예술공장 전경.

오랫동안 쓰지 않고 놀려 둔 ‘유휴공간’을 바꾸어, 사람들이 다시 찾게 만드는 공공정책이 이어지고 있다. 폐공장, 폐교, 빈 점포, 사람들이 떠난 지 오래된 마을 같은 곳이다.

울산에서는 남구 장생포 옛 세창냉동창고가 새롭게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20여년 간 방치되던 창고는 문화의 에너지를 불어넣는 작업을 마치고 내년 즈음 다시 개방된다.

2022년 개관하는 울산시립미술관 건립사업도 큰 틀에서는 빈 공간을 새롭게 채우는 일이다. 중구문화의거리, 디자인거리, 전선지중화, 문화관련 업종 입점 및 활성화지원과 함께 미술관은 한때 낙후됐던 울산 원도심이 문화의 생기로 다시 활력을 찾도록 하는데 정점이 될 전망이다.

이처럼 문화재생 키워드로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은만큼, 타 시도의 사례를 찾아보고,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디테일한 방문기를 총 4회에 걸쳐 소개한다.

27년간 버려졌던 전주제1공단내 ‘썬전자’ 공장
리모델링후 2016년 ‘팔복예술공장’으로 문열어
현대미술 중심 복합문화공간 표방, 지속 정비중
입주작가 8명 거주하며 창작과정 관람객과 공유
2층과 옥상은 전시공간으로…예술교육도 모색

전국 어느 곳을 가더라도 공간을 바꾸는데는 예술인과 그들의 아이디어를 마중물로 활용하는 사례가 많다. 사람을 불러모으는데는 그들 활동이 ‘특효약’인 셈이다. 무엇보다 그들이 완성해놓은 결과물만 갖다놓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공간 속에 아예 입주시켜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일년씩 먹이고 재워가며 미술품의 기획부터 제작과정까지 지켜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를 ‘레지던스 공간’이라고 한다. 원래는 숙박용 호텔과 주거용 오피스텔이 합쳐진 개념에서 출발했지만, 요즘은 작가들을 일정 기간 머물게 해 그 곳에서 일어나는 창작의 모든 과정을 일반인과 공유하도록 만드는 곳으로 더 인식되고 있다.

▲ 팔복예술공장의 창작공간 1층에 자리한 커뮤니티카페 ‘써니’. 주민참여공간으로 운영 중이다.

개관 3년 차인 전주 팔복예술공장은 전체적으로는 복합문화공간을 표방하지만 아직 완성단계는 아니다. 현재로선 레지던스 기능이 더 부각된다.

원래는 전주제1공업단지 내 ‘썬전자’(카세트테이프 생산공장) 자리였다. 잘 나가던 회사는 음원을 스마트폰으로 다운로드 해 듣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면서 자연스럽게 문을 닫았다. 71년 가동된 뒤 1992년 문을 닫았고, 27년 간 방치되며 아무도 찾지않다가 2016년 공장 건물을 리모델링 해 예술하는 공간 ‘팔복예술공장’으로 재개관 한 것이다.

이 사업이 가능하게 된 건 정부가 폐산업시설의 재생을 돕는 공모사업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폐산업시설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지자체들이 공모했고, 그 중 전주시가 선정됐다. 국·시비 25억씩 총 50억원의 사업비가 공간을 리모델링 하는데 쓰였다. 4000평 공장 전체 부지는 아직도 부분부분 리모델링이 이어지고 있다. 건축가와 예술인, 주민들이 참여한다. 그 사이 전주시는 46억5000만원을 들여 그 땅을 아예 매입했다. 그리고 사업의 지속성을 위해서는 민간보다 공공영역의 손길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 공간 운영의 몫은 전주문화재단에 맡겨졌다.

▲ 여공 500여명이 일하던 옛 테이프 생산라인은 대형 전시장으로 변신했다.

팔복예술공장은 ‘공장 속의 섬’이다. 실제로 예술공장 주변에는 아직도 생산라인이 가동되는 공장이 적지 않다. 공간 앞쪽 철길에는 아직도 하루에 3번씩 각종 물품이나 재료를 나르는 산업단지 수송용 열차가 오고간다. 한때는 가장 산업화 된 공간에서 그 어느 순간 문을 닫은 폐공장으로 변해버린 공간을 다시 일으키려면 어떤 것을 보여줘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그들이 선택한 건, 전통문화의 도시 전주의 도시 정체성과는 이질적이지만, 그래서 그 도시의 가장 취약점이기도 한, 현대미술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팔복예술공장은 ‘창작공간’ ‘예술교육공간’ 두 동으로 구성된다. 창작공간에는 현재 8명의 입주작가들이 1층 숙소와 작업실에 거주하고 있다. 늦은 밤 공장 주변으로는 모든 근로자가 퇴근해 깜깜해진다. 하지만 이들 입주작가들의 활동 때문에 오로지 팔복예술공장만은 생생하게 불을 밝히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창작공간’ 2층은 대형 갤러리다. 무려 500명 여공들이 밤낮없이 테이프를 만들던 생산현장이었다. 이제는 입주작가들의 전시와 특별기획전을 진행하는 전시공간으로 바뀐 것이다. 옥상 역시 전시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또 다른 건물은 ‘예술교육공간’인데, 아직도 공간을 정비하는 중이다. 노후건물 진단을 받았더니, 일부 공간에 대해 더이상 쓸 수 없어 위험 공간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정비 사업은 그 공간을 떼어낸 뒤 새롭게 뭔가를 채우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 팔복예술공장의 옥상갤러리 모습.

가끔 팔복예술공장과 같은 곳이 미디어에 소개될 때 마다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을 만난다. 미술 애호가와 작가그룹 등 미술과 창작행위가 이뤄지는 작업공간에 관심 많은 부류다. 하지만 가끔은 이 공간 전체를 미술과 상관없이 관광지로 오해하는 이들도 만난다. 무언가 엄청난 것을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갖고 시간과 돈을 들여 그 곳을 방문했지만, 실망감만 안고 돌아오는 경우를 자주 봤다.

레지던스 공간은 국내 미술관의 새로운 트렌드라고 할 만큼 전국 곳곳에서 다양한 규모와 내용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울산 역시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이같은 재생공간은 그 공간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이나 그 공간에 스며있는 예전의 추억이나 스토리 때문에 쉽게 눈길을 끌지만, 기대만큼 다양한 아이템을 갖추었는지 여부는 각 공간마다 차이가 크다. 무엇보다 현대미술 관람에 취약한 아이들이나, 미술에 전혀 흥미가 없는 사람에게는 공간 자체를 둘러보는 과정이 고역일 수도 있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기대감을 줄이는 것. 그리고 방문 전 해당 공간에 대한 성격이나 정보를 명확하기 인지하고 가야한다는 것 정도다. 반드시 홈페이지(팔복공장은 현재 홈피 리모델링 중) 혹은 SNS를 통한 자료검색을 거쳐 그 공간에 가면, 무엇을 볼 수 있고, 할 수 있는지, 일정과 프로그램을 확인하자. 개관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성격이 바뀌기도 하고, 없던 프로그램이 생겨나기도 한다. 줄어드는 기대감 만큼 만족감이 커질 수 있다.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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