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

꼬인 것은 풀어지고 뭉친 것은 흩어진다. 흩어진 자리엔 씨알이 영글고 잎들은 색조를 바꾼다. 자연은 다시 전환의 시점이다. 전환은 대립과 마찰을 예고하지만 자연성에 기인한 전환에는 가고 오는 것들이 조화로울 뿐 마찰과 대립은 발견되지 않는다. 장마가 그치면 맑고 높은 하늘이 펼쳐질 것이고 이삭은 산들바람에 영글어 갈 것이다. 길가에 선 잡풀들, 숨 가쁘게 담벼락을 타고 오르던 넝쿨들도 동작을 멈추었다. 빈자리의 여백은 늘어나기 시작했고 늘어난 여백들 사이로 감추어졌던 것들이 하나둘 제 모습을 드러낸다. 빗물 머금은 잎들의 시선은 깊고도 고요하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온갖 개념으로 가득 찬 나의 뇌를 발달시킨다. 객관적인 풍경이 감각기관을 통해 뇌에 전달되면 뇌는 개념을 바탕으로 바라보는 자의 마음을 창조한다(리사 F 배럿,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 생각연구소 2017). 마음이 닿을 때 사물은 스스로 표정을 드러낸다. 우리의 감각은 그 인상, 즉 외부 세상에 대해 주관적으로 느끼는 이미지만을 받아들인다(알프레드 아들러, 삶의 의미, 부글북스 2017). 그래서 풍경은 각자 마음의 풍경인 것이다. 물리적 실재가 그것을 지각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존재하듯, 마음의 풍경은 마음이 있는 사람만이 경험한다. 사물이 있는 그대로 무엇으로만 보인다면 그 순간 우리의 마음은 없는 것이다. 철학자 데니얼 데닛은 사물이 인간의 수준으로 움직일 때 마치 그들이 감정과 의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식물에게서 마음을 자각하지 못하는 이유는 식물에서 나타나는 행위적 움직임이 매우 느려 우리가 포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계절은 다시 전환의 시점이다. 전환의 순간에서야 우리는 사물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움직임을 통해 그들의 표정을 읽는다. 간절한 마음이 되살아나서 표정이 되는 것이니 표정을 읽는 것은 곧 그들의 마음을 읽는 것이다. 이때 무엇이 무엇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는 가끔 자신의 마음조차 바로 보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다. 다른 마음을 바라보는 것, 이것이 궁극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는 것이다(대니얼 웨그너, 커트 그레이, 신과 개와 인간의 마음. 2018 청림출판).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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