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보다 훨씬 작은 부탄을 둘러보며
노자의 소국과민(小國寡民) 떠올려
통제·경쟁이 적은 학교 현실화 꿈꿔

▲ 조용식 울산시교육청 비서실장

‘나라를 작게 하고 백성의 수를 적게 하라’는 노자의 말은 무슨 의미일까? 소국과민(小國寡民)이라는 이 말의 해석을 두고 의견이 분분할 것이다. 사회 환경이 변하고 2000년이 훨씬 지난 시점에 단순 텍스트만을 갖고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떤 글귀나 명언도 현재 환경을 반영하여 풀이하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 아닐까? 무슨 조직이든 규모가 커지고 그 구성원의 수가 많아지면, 이를 운영하기 위한 제도와 규칙은 많아질 수밖에 없다. 또한 이러한 규칙을 어기는 사람에 대한 통제도 많아질 테니, 갈등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지사다. 노자는 이러한 억지와 인위적인 것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의 삶이 불행하다고 보고 이른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했다.

지난달 19일부터 23일까지 부탄교육부와 교육정보화 지원사업 양해각서 체결을 위해 노옥희 교육감을 수행하여 부탄을 다녀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나라에서 태어난 것을 아주 큰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첩첩 산중에 사는 것이 어렵지 않느냐’라는 취지로 물은 것에 대해 우리의 통역을 맡았던 부탄 가이드가 한 말이다. 부탄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경희대에서 5년간 유학하고 고국에 돌아가 생활하고 있는 그녀의 말에서 나는 어떤 가식도 느끼지 못했다. 자연환경의 험준함, 소득수준, SOC환경 등 모든 면에서 우리나라와는 비교불가인 부탄왕국 국민들이 ‘그 나라에 태어난 것을 축복으로 여긴다’는 것이 과연 가당키나 한 말인가? 도로는 협소하다 못해 위험해 보였다. 수도인 팀푸의 고도가 2400m이니 온 나라가 ‘비옥한 토지’와는 거리가 멀다. 대형여객기가 착륙할만한 넓은 땅도 없다.

두 시간이 넘는 거리를 걸어서 등교하는 학생들도 있다. 학교 건물은 우리나라 70년대 수준이다. 모든 것이 느리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동차 제한속도는 40㎞였다. 소들이 도로위에 누워 있으니 속도를 낼 수도 없다. 사람들이 드나드는 식당 건물 도로에 견공들이 진을 치고 누워잔다. 쫓아내는 사람도 없지만 신경쓰는 개들도 없다. 그런데도 행복하다고? “학교 폭력이라든가 교권추락 등의 문제는 없습니까?” “험준한 산길을 걸어서 등교하는데 사고라든가 결석이라든가 하는 문제는 없나요?” 궁금한 것이 많았다. 부탄 교사들은 대부분 별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 약간 수줍어 보였으나 친절하게 답했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 바로 앞에 부탄 3대 국왕 추모탑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 종일 그 탑을 돌며 기도한다. 나도 아침에 두번 탑돌이를 했다. 그러나 차마 내 가족과 나의 건강에 대해 빌 수는 없었다. 나라의 안녕과 자연환경이 잘 지켜지기를 빌고 있는 그들 틈에 섞여 내 인생에 대해 기도할 정도로 뻔뻔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인구 80만에 남한의 절반 정도 크기를 가진 작은 나라 부탄, 모든 생명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고 일체 도축을 하지 않으며, 전 국토의 60% 이상을 숲으로 가꾸어야 한다고 명시한 헌법을 가진 나라. 그들이 느끼는 행복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 있을 것이다. 천 원짜리 행복과 만 원짜리 기쁨을 구분할 줄 아는 머리로는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 또한 잠시 ‘머리’로만 느끼고 왔을 뿐이지만. 작고 적으면 통제와 경쟁이 적을 것이고 당연히 배려와 존중은 클 수밖에 없다. 적은 학생 작은 학교 경쟁이 아닌 협력으로 함께 하는 교육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실천해야 한다. 보다 작게 보다 적게 만드는 교육행정! 노자가 주창했던 ‘소국과민’의 현실화된 부탄의 국가사회 모델에서,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울산교육의 방향성을 다시 확인했다면 ‘억지’일까? 조용식 울산시교육청 비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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