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방곡곡 헤매고 친척과도 멀어져…"시민 관심·제보가 가장 큰 힘"

▲ 지난 5월에 열린 '제13회 실종아동의 날' 행사 모습[연합뉴스 자료사진]

[경상일보 = 연합뉴스 ] 명절이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가족이다.

    많은 이들이 명절 때마다 힘든 귀성길도 마다하지 않고 고향을 찾아 떠나는 것은 가족과 보내는 소중한 시간 때문이다.

    그러나 가족의 품 안에서 행복해야 할 명절에 그리움과 눈물로 한숨 짓는 이들도 있다.

    오래전 사라진 아이가 사무치게 생각나서, 혹은 수년째 아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몰라 속앓이하는 실종자 가족에게는 명절은 더없이 힘든 날이다.

    '1997년 4월 20일'. 벌써 2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정혜경(58)씨는 그날을 잊지 못한다. 집 앞에서 환히 웃던 아들 하늘이(당시 4세)가 사라졌던 그 날, 정씨의 시간은 멈춰섰다.

    정씨는 아들을 찾기 위해 모든 걸 내려놓았다. 하늘이를 찾을 수 있다면 뭐든 다하겠다고 나섰다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부딪히기도 했고 주변 이웃, 친척과도 멀어졌다.

    정씨는 14일 연합뉴스와의 한 전화 통화에서 "아이가 없어진 걸 알았을 때 '가출'이 아니라 '실종으로 처리해줬으면 금세 찾았을 텐데"라면서 "명절이 다가오면 아이 생각에 더 힘들다"고 울먹였다.

    하늘이 동생들에게는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다. 하늘이를 찾으러 다니면서 남아있는 딸·아들에게는 생일날 제대로 된 미역국도, 남들처럼 근사한 생일 밥상도 차려주지 못했다고 했다.

    정씨는 "엄마는 왜 하늘이 오빠(형)만 생각하냐고 아이들이 몇 번이나 서운해하더라"며 "하늘이는 하늘이대로, 동생들은 또 동생들대로 미안한 마음만 켜켜이 쌓여간다"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하늘(당시 4세)군의 모습 [가족 제공=연합뉴스]

    1991년 8월부터 올해로 28년째 딸 유리(당시 11세)를 찾아다니는 정원식(68)씨는 "자식을 잃어버리고는 행복이란 단어를 잊어버렸다"고 했다.

    경기 안산시의 친척 집에서 동생들과 놀던 유리는 갑자기 사라졌다.

    당시 유리와 함께 있던 동생들이 "어떤 아줌마, 아저씨가 언니를 끌고 갔어"라고 말하는 것에 놀라 곧바로 뛰어나갔지만, 딸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경찰에 신고해봐도 소용이 없었다.

    정씨는 연합뉴스와 한 통화에서 "딸 아이를 찾으려고 전국 방방곡곡 안 가본 곳이 없다. 반쯤 미쳤다 싶을 정도로 여기저기 찾으러 다녔다"고 돌이켜 말했다.

    정씨는 "추석이나 설 명절에 차례상을 올리고 조상님들께 '우리 유리 좀 찾게 해주세요'라고 빌고는 한다"며 "누구를 붙들고 어디 가서 이야기해야 할지 몰라 장기 실종자 가족은 참 힘들다"고 털어놨다.

    어린 시절의 딸 아이 모습과 현재 추정 모습을 함께 담은 전단을 만들어 매년 4만여장씩 뿌렸지만, 올해는 건강이 좋지 않아 그러지도 못했다며 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정유리(당시 11세)양의 과거 모습과 현재 추정 모습 [가족 제공=연합뉴스]

    지난 5월 보건복지부와 경찰청이 발표한 '실종아동 신고 접수 및 미발견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실종아동 신고는 2만1천980건으로, 신고된 아동 가운데 46명(올해 4월 말 기준)은 발견되지 못했다.

    폐쇄회로(CC)TV의 발달과 법·제도적 정비 등 노력 덕분에 실종아동 발생 건수는 점차 줄어드는 추세지만, 신고 접수 48시간이 지나도록 발견되지 않은 장기실종 아동은 4월 말 기준 총 643명이다.
    실종된 지 20년이 지난 경우도 449명에 달한다.

    '전국미아·실종 가족 찾기 시민의 모임' 나주봉 회장은 "실종아동 가족은 20년, 30년이 지나도 그 시간 속에 그대로 멈춰있다. 특히 장기실종 아동 문제는 여전히 미흡한 부분이 많다"며 법적·제도적 개선을 바랐다.

    실종아동의 보호 및 지원 사업을 수행하는 실종아동전문기관 측은 "장기실종 가족들은 죽기 전에 자녀를 찾아 만날 수 있을지에 대한 심리적 불안을 호소하는 경우가 있다"며 "실종아동에 대한 관심, 제보가 큰 힘이 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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