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목 쏠리고 진영다툼 치열한 사건은
피의사실공표 논란 휩싸일 가능성 커
알권리-인권보호의 균형점 잘 찾아야

▲ 박기준 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법무부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의 압수수색과정에서 범죄 혐의와 관련된 것으로 의심되는 문건이 언론에 공개되자,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수사과정에서 피의사실을 흘리는 것은 범죄다. 이 사실은 검찰총장이 반드시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검찰에서 흘린 것이 아니라는 해명이 있었지만 논란이 계속되었다. 법에 따라 범죄 혐의를 밝히기 위해 검찰 수사가 역동적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수사 주체를 피의사실공표죄로 수사하라고 하는 것은 당혹스럽다.

확인되지 않는 피의사실이 적나라하게 보도되어 유죄 낙인을 찍어버리는 문제점은 많이 지적되어 왔다.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사건의 수사에서 확인되지 않은 피의사실들이 언론에 보도되는 경향이 꽤 있다. 국민의 알권리를 이유로 한 언론의 취재 경쟁과 우리나라 특유의 냄비처럼 달아오르는 사회문화적 분위기가 원인일 듯하다. 진영간 찬반 다툼이 있는 사건 수사에서 더욱 심하다.

피의사실공표죄는 검찰, 경찰 등 수사업무 종사자들이 저지를 수 있는 범죄다. 실무상 피의사실공표죄가 적용되어 처벌된 사례는 거의 없었다. 과거 수사의 성과를 위해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것이 관행적으로 용인되어 왔다. 살인범 등 흉악범, 거액 사기범, 마약범, 조직폭력배 등에 대한 현상수배 공고를 볼 수 있다.

피의사실 공표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 때는 위법성이 조각(阻却)된다. 흉악범 도주로 시민생활을 위협하는 때에 매스컴에 경고하는 것은 정당행위이나, 피의자 도피로 수사에 곤란을 겪자 시민 협조를 구한다는 명분하에 광고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는 기소단계에서 공보준칙에 따라 이루어진다. 국민적 관심이 있는 사건의 수사에서 수사절차적 사항에 대하여 언론에 공보하는 것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서 필요하다. 공소제기전이라고 하여 수사상황을 전혀 알려주지 않을 경우 부정확한 추측 보도를 부추기게 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번 울산경찰이 ‘약사면허증 위조사건’을 검찰에 송치하면서 보도자료를 배포하였는데 실적 홍보로서 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공소제기전의 배포라 문제가 될 수 있다. 울산검찰이 현재 피의사실 공표 여부를 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범죄를 수사하여 처벌하는 형사사법은 인권보장이 핵심적 작동원리이므로 실체적 진실발견도 적법절차를 준수하여야 한다. 관행적인 중간수사결과 발표나 확정되지 않은 피의사실이 흘러나와 보도되는 것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배치된다. 그러나 범죄의 발견, 증거의 확보, 피의자 검거 등 수사 목적을 달성하려는 수사담당자들의 의욕과 언론의 취재 경쟁이 뒤섞이다 보면 수사절차에 대한 공보인지, 피의사실 공표인지 애매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수사종사자의 피의사실 공표와 무관하게 언론이 나름대로 취재하여 언론기관 책임하에 보도하는 것은 피의사실공표죄와 무관하다.

중요한 것은 수사종사자들 스스로 수사보안을 철저히 지키고, 이를 감시 감독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도 피의사실공표죄에 대한 수사가 본래의 수사와 병행하여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가사 수사를 하더라도 사후적일 것이다. 실제 수사도 보도의 경위나 누가 피의사실을 흘렸는지를 밝히는 과정이 될 것이므로 언론의 취재원 보호와도 부딪칠 우려가 있다.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고 진영간 다툼이 치열한 사건의 수사에서는 국민의 알권리와 피의자의 방어권이 충돌하고, 정치적 찬반 의견이 심하게 대립하는 것이 현실이다. 검찰 수사가 피의사실 공표 논란에 휩싸이지 않으려면 압수수색, 소환 등 수사 과정에 대한 공보의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하고 이를 준수함으로써 국민의 알권리와 인권보호간에 균형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박기준 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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