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없이 국경 넘나드는 유럽처럼
두려워 하거나 미워하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여행 꿈꾸는 환경됐으면

▲ 김상곤 전 울산시 감사관 독일 만하임대학 초빙 연구원

유럽생활의 여러 가지 장점중의 하나가 이웃 나라로 쉽게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독일은 유럽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것이 국내 여행하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프랑크푸르트 옆의 작은 도시 만하임에서도 자동차로 두세 시간이면 프랑스, 스위스, 룩셈부르크와 같은 나라를 이웃 도시 가듯이 드나들 수 있다. 그래서 물건을 사러 서로 국경을 건너기도 한다. 인근에 있는 유명한 아웃렛에 가면 쇼핑하러 온 프랑스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대여섯 시간이면 서유럽은 물론이고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 같은 동유럽의 국경도 건너갈 수 있다. 자동차뿐만 아니라 철도도 마찬가지다. 작은 도시 만하임 중앙역에서 프랑스 파리나 스위스 바젤로 가는 기차를 탈 수 있다.

이국 도시로의 여행이 자동차 시동만 걸면 가능하다는 사실이 사면이 꽉 막힌 나라에서 살아온 사람에게는 쉽게 현실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지도 위의 여행이었다. 주말 저녁마다 지도 위에서 내일 갈 수 있는 곳을 정하는 것이다. 가고 싶은 도시를 정하고 구글 지도에서 소요시간을 검색한다. 체코 프라하 다섯 시간, 오스트리아 빈 여섯 시간, 벨기에 브뤼게 일곱 시간. 좀 더 과감해지면 스페인 마드리드까지 꿈을 꾼다. 이렇게 소요시간을 알고 나면 구체적인 준비가 가능하다. 그래서 자동차 트렁크 뒤에는 항상 물과 버너, 라면, 그리고 옷가지들을 싣고 다닌다. 내일이라도 떠날 것처럼.

여행은 실제로 가는 것도 좋지만 꿈꾸고 계획하면서 즐거움을 얻기에도 참 좋은 대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오면서 낯선 환경으로의 여행을 꿈꾸어 본적이 별로 없었다. 더구나 다른 나라로의 여행은 머릿속으로 계획하기에도 벅찬 대상이었다. 가장 손쉬운 여행지가 제주도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반도에 사는 우리들과 유럽과 같은 대륙에 사는 사람들과의 차이였다. 유럽 사람들은 이웃 나라는 물론이고 북유럽에서 남유럽으로 여행하는 것도 힘든 일로 여기지 않는 것 같다. 부활절 휴가철에는 독일의 아우토반이 스페인이나 스위스로 휴가를 떠나는 네덜란드나 벨기에 간판을 단 차량으로 붐비는 것을 보았다. 대부분 이부자리를 뒷좌석에 싣고 가는 것을 보면 부자들의 편한 여행만은 아닌 것 같다. 또 주위에서 몇 백 유로로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왔다는 이야기도 더러 들었다. 그러다 보니 여행을 꿈꾸는 일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일상이 된 것 같다.

SNS로 일상의 소식을 주고 받는 독일 할머니가 있다. 70세가 넘어 보이는 이 할머니는 두 달 전부터 카리브해의 풍경을 사진으로 올리고 있다. 내년 3월 친구와 함께 카리브해로 가는 여행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자랑한다. 친구들과 여행계획을 세우면서 그 시간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말을 배우고자 사귄 친구이지만 그 나이에도 끊임없이 여행을 꿈꾸는 노인을 보면서 스스로 떠날 용기를 얻는다.

저녁에 계획한 이국 여행을 다음날 아침에 실행한 적도 몇 번 있었다. 바다를 보기 위하여 대서양까지 7시간을 달려갔다가 다음날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여행을 계획하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여전히 거리가 있다.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여행이라서 오히려 쉽게 실행하지 못하고 미루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유럽에 살면서도 우리나라에서와 같이 다른 나라로의 여행을 어렵게 여기는 심리적 습성이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이웃 나라가 적대적인 국가이거나 언제든지 적대적으로 변할 수 있는 나라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사는 사람의 정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유럽대륙의 여행객들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드는 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이 나라들은 앞으로 무력으로 전쟁을 시도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축구와 같은 운동경기로 싸울지는 몰라도 폭력으로 서로를 협박하지는 않으리라는 믿음이다. 한때 국내에서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제목의 책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젊은이들에게 세상으로 나가는 용기를 가지라고 격려하는 메시지였다. 나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지도 위에서라도 자유롭게 여행을 꿈꾸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웃나라를 두려워하거나 미워하지 않으면서.

김상곤 전 울산시 감사관 독일 만하임대학 초빙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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