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논설위원

여름의 불볕더위 속으로 태풍 ‘링링’이 찾아오더니 이윽고 추석도 훌쩍 지나가버렸다. 아직도 여름인가 했는데 어느 사이엔가 벚나무 이파리가 노란 색을 띠기 시작했다. 일엽지추(一葉知秋). 나뭇잎 한 잎을 보고 가을이 왔음을 안다고 했던가. 봄날의 화려한 벚꽃이 아직 기억에 생생한데 노란 벚나무 이파리는 벌써 도로 위로 나뒹군다.

산승불해수갑자(山僧不解數甲子)
산 속 스님은 세월을 헤아리지 않고도,
일엽낙지천하추(一葉落知天下秋)
낙엽 하나로 천하에 가을이 왔음을 안다

이 시구는 <문록(文錄)>이라는 책에 실려 있는 당나라의 이름없는 시인의 시다. 이 시로부터 많은 시가 파생됐고, 조선시대 문인들도 이 시구를 인용해 가을을 노래했다. 당나라 이자경의 ‘청추충부(聽秋蟲賦)’라는 시에는 ‘일엽낙혜천지추(一葉落兮天地秋, 나뭇잎 한 잎이 떨어지니 천지는 가을이네)’라는 구절도 있다.

중국 전한(前漢)의 유안이 저술한 책 <회남자(淮南子)>에도 비슷한 표현이 있다. 회남자는 ‘고깃국이 끓고 있는데, 그 맛이 궁금하다면 국을 다 먹어야 그 맛을 알 수 있는 게 아니다’며 다가올 계절의 변화를 말하고 있다.

▲ 벚나무 단풍

견일엽낙이지 세지장모(見一葉落而知 歲之將暮)
떨어지는 나뭇잎 하나를 보면 한 해가 장차 저물려는 것을 알 수 있고,
도병중지빙이 천하지한(覩甁中之氷而 天下之寒)
병 속의 물이 언 것을 보면 천하가 곧 추워지리라는 것을 안다… <회남자>

선종(禪宗)의 6대 조사인 혜능대사가 떠나려하자 사부대중이 슬퍼하며 지금 가시면 언제 오시는지 물었다. 육조대사는 ‘모든 부처님이 열반을 보이시듯 왔으면 가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면서 ‘나뭇잎이 떨어지면 뿌리로 돌아가고, 돌아올 때는 아무 말이 없다’고 했다. 노자도 도덕경에도 비슷한 말을 했다. ‘만물이 성장하고 변해갈 때 나는 그들의 돌아감을 본다. 만물은 무성해졌다가 다시 그 뿌리로 되돌아간다’ (안병화의 ‘오늘의 고사성어’참조)

필자는 노란 벚나무 이파리가 우수수 떨어질 때 벌써 병 속에 얼고 있는 물을 상상한다. 끓고 있는 국을 다 먹어야 비로소 맛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권력도 그러하다. 곧 천하가 추워지리라는 것은 한장의 낙엽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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