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창조 기반의 ‘미국식 커피숍’
보스턴 茶 사건 계기로 독립의 상징
韓서도 커피로 자유·토론문화 형성

▲ 한규만 울산대교수·영문학

미국의 커피문화는 한국을 커피소비 세계 6위 국가로 변모시켰다. 스타벅스는 한국에 1호점을 낸지 올해 20주년을 맞았다. 지난 5월에는 스페셜티 커피 ‘블루보틀’ 1호점이 한국에 문을 열었다. 한국의 이러한 대중문화로서 커피문화 열풍은 미국으로부터 수입된 것이다. 어떤 이는 한국이 미국의 커피식민지가 되었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최근 미국 인구의 약 60%가 하루 서너잔의 커피를 마시고, 아침마다 다양한 커피점에서 커피 한잔 사들고 학교로 또는 직장으로 가는 모습은 아주 일상적인 미국 사회 풍경이다. 커피문화의 수출국인 미국 국민들의 커피사랑에 담긴 사회적 의미를 살펴보는 것은 한국의 커피문화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첫째, 1895년 뤼미에르 형제의 ‘기차도착’이라는 1분짜리 최초의 영화가 상영된 곳은 영화관이 아니라 ‘르 그랑 카페’라는 커피하우스였다. 이곳은 파리의 예술가와 지식인들로 가득찼고, 자유로운(다른 말로 하면, 발칙하고 엉뚱한) 발상과 대화가 오갔으며, 커피향기와 담배연기가 공간을 채웠던 곳이다. 요즘 말로 하면 ‘제3의 공간’이다. “산업화, 도시화에 따른 생산과 소비의 장이 분화하여 가정과 직장 즉 제1의 공간과 제2의 공간이 분리됐는데 동시에 그 사이에 제3의 공간이 생겨났다. 그것은…여가의 공간이며 자유의 공간이다.”(사회복지학사전·2009·이철수). 우리가 열광하고 있는 ‘미국식 커피숍’은 유럽의 이러한 자유와 창조정신이 깃든 ‘제3의 장소’ 전통을 따르고 있다고 생각된다. 한국에서 커피숍은 새로운 미국문화와 전자기기에 빨리 적응하려는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들이 모이는 공간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둘째, 미국에는 일찍 커피가 소개되었으나 음료로서는 대중적이지 않았고, 초기 미국이민자들이 즐겨 마신 건 홍차이었다. 미국에도 1670년경 커피숍이 생겨난다. 박경민(신동아·2016년 10월호)에 따르면, 이 시절 미국 최초로 ‘런던 커피하우스’와 ‘거트리지 커피하우스’가 문을 열었다고 한다. 그런데 커피는 1773년 ‘보스턴 차 사건’ 이후로 일약 애국심을 표현하는 ‘건국음료’ ‘애국음료’로 등극하게 된다. 미국역사에 따르면, 영국정부는 1767년 홍차에 대해서도 과세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식민지 지식인들이 분개하며 매일 만나 격렬한 토론하던 곳이 보스턴 소재 ‘그린 드래건 태번’이라는 커피하우스이었다. 이곳을 중심으로 사건을 도모한 보스턴 시민들은, 1773년 12월 겨울밤, 보스턴 항에 정박중인 영국 동인도회사 배 실려 있던 차 상자를 모조리 바다에 던져버렸다. 이 사건은 미국 독립혁명의 시발점이 된다. 영국의 탄압이 시작되자, 저항운동의 하나로 자신들이 즐겨 마시던 홍차를 끊고 커피를 적극적으로 마시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제 커피는 개인과 비즈니스 만남의 매개체에서 독립심과 애국심의 상징이 되었다. 박경민에 따르면 B. 프랭클린은 “‘런던 커피하우스’에서 정치 모임을 자주 열고 이곳에서 만나는 모든 정직한 영혼들을 사랑한다”고 말할 정도로 커피를 함께 마시며 만나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겼다고 한다.

한국의 주요 커피고객층인 한국 여성들은 대화의 장소를 가정집에서 커피숍으로 전환시키면서 가부장사회의 가정이라는 틀과 과거 가치관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젊은 세대들은 기성세대와 차별화 전략으로 술대신 커피음용을 선호함으로써 몰개성적인 군사-조직문화에서 탈피하여 개인주의에 바탕을 둔 자유 토론문화를 지향하고 있다고 보인다. 커피와 커피숍을 기반으로 하는 개인, 자유, 토론의 문화현상은 겉으로 거창해 보이는 어떤 정치권력보다도 훨씬 더 큰 가치관의 변혁을 우리사회에 형성해가는 과정으로 보인다. 한규만 울산대교수·영문학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