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라영 화가·미술학 박사

학창시절 친구들과 한창 손 편지를 주고받았던 때가 기억이 난다. 그 손 편지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시’였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그때 한창 인기가 있던 시가 원태연 시인의 시였다. 그리고 편지에 넣을 시를 고르기 위해 도서관의 많은 시집을 뒤졌던 기억이 난다. 찾다보니 발견한 좋은 시집은 당시의 흔한 선물이기도 했다. 대학에 입학한 후로 서점에 가서 시집을 읽거나 누군가를 위해 시를 적어 본 기억이 나질 않는다. 사실 요즘은 굳이 서점을 가지 않아도 네이버에 ‘선물하기 좋은 시’라던가 ‘가을에 어울리는 시’라는 검색어만 넣어도 정보는 수 만 가지로 쏟아진다. 마음에 드는 것을 한 번 싸악 긁어 붙여, ‘보내기’에 터치만 하면 직접 손으로 건네지 않아도 다른 공간에서 바로 받아볼 수 있다. 손 편지를 건넬 때와 받을 때 느낄 수 있었던 그 감정은 느끼기 어렵다. 비교하자면 요즘은 그런 낭만은 느끼기 힘들다.

시를 쓰는 미술가는 어떨까. 자신이 직접 쓴 시는 조형작업의 시작이 된다. 미술가가 시를 쓴다는 것도 참 멋이 있고, 그 시가 미술작품이 된다는 것도 참 남다르게 느껴지는데, 20대의 꽃 청년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매력적인가. 작업의 좋고 나쁨을 떠나 참 만나보고 싶은 사람일 것 같다.

작가가 생각하는 순수함은 아주 맑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보며, 구름 속에 다른 세상이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을 때이다. 그 믿음은 키가 멈출 때 즈음 사라졌고, 동시에 순수함도 잃었다고 말한다. 사실 멋모르는 상태는 순수하다고 표현될 수 있다. 많은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은 경험치가 많아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 구름속 이야기250x250㎝, 캔버스에 수성페인트, 2019

멋모를 때의 순수함이라는 감정은 점차 사라질지 몰라도, 또 다른 여러 감정들을 경험하게 된다. 어쩌면 ‘순수한’의 반어적 표현은 ‘순수하지 못한’이 아니라 ‘성숙한’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작가는 가끔 하늘을 본다. 그 하늘에서 자신이 순수했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 기억들의 잔상들을 함께 본다. 100점이나 되는 그 기억들은 모두 푸르디푸르다. 그 속에서 작가가 찾고자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 아니라, 재미없는 과정을 거치며 점점 성숙해져가는 ‘자신’ 일지도 모른다.

‘재미없는 과정을 지나고 있는’ 이인수 개인전은 오는 9월23일까지 중구 문화의 거리 내 라온갤러리에서 진행되며, 시와 조형작업을 함께 볼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기라영 화가·미술학 박사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