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대옥 무거중 교사

“안녕하세요?”하며 인사하는 학생들.

“예~안녕하세요?”하며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나. 가끔 저네들끼리 이야기하느라 바쁜 아이들이 있으면 나는 기어이 때를 기다렸다가, “안녕하세요?”하고 목청을 높이며 허리를 굽혀 먼저 인사를 하고, 모여 있던 아이들의 “안녕하세요!”와 함께 한 번 더 인사를 한다. 이렇게 100번쯤하고 나면 급식소로 이동하는 줄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처음 급식지도를 하며 학생들에게 인사를 할 때, 나를 처음 보는 1학년 학생들은 ‘저 사람은 누구지?’하는 표정으로, 나의 “안녕하세요?”에 떠밀려 인사를 하고는 했다. 가끔 “선생님은 무슨 선생님이예요?”묻는 아이도 있다. 그러면 나는 “국어 선생님인데 올해는 3학년과 공부하고 있어.”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씨익 웃고, 고개를 끄덕이며 내 앞을 지나간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고도 인사를 못 나눈 아이가 있으면, 시간이 허락하는 한 기어이 다가가 “안녕하세요?”를 한다. 그럼 아이도 자연스럽게 “안녕하세요!”하며 배시시 웃고 간다.

나의 이 인사 집착은 오랜 역사가 있다. 주택가 골목 전봇대에 붙어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던 시절. 나는 동네 사람이 지나가면,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안녕하세요?”를 하느라 경기에서 아웃이 되는 별스러운 아이었다. 그래서 동네에 ‘파란 대문집 딸래미’를 계란아저씨, 고물아저씨-그때는 그렇게 불렀다-도 다 알았는데, 덕분에 길을 잃어 옆 동네에서 헤맸을 때, 고물아저씨의 발견으로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고는 부끄러움이 많아졌고, 선생이 된 후, 인사는 오히려 받는 것이 되었다.

‘공수인사’가 특색사업인 학교에서 근무할 때였다. 복도에서 선생님을 보고 인사하는 아이가 열에 다섯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인사를 잘하지 않는 이유를 학생들에게 물어 보았다.

“선생님이랑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왜 인사 안 해?”

“선생님들이 인사 잘 안 받아줘요” “잘 모르는 선생님이예요” “여러 번 만났는데 또 해요?”와 같은 아이들의 말에 또 일일이 반박을 해줬다. “못 봤을 수도 있지” “우리 학교 선생님이면 모르더라도 해야지!” “여러 번 만나도 하는 거야”

이 모습을 시큰둥하게 보고 있던 맨 앞자리에서 “맨날 인사 받지만 말고, 먼저 하면 되지 않나?”하는 소리가 들렸다. “야! 쌤이 선생이니까!……그러니까……먼저 할게.”

처음에는 욱 하는 마음에 “야!”를 질렀는데, 틀린 말이 아니다 싶어 얼른 말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의 큰 목소리에 긴장했던 아이들도 덩달아 “와~”하고 웃어 버렸다. 내가 파란 대문집 딸래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어진 것이 바로 그때다.

학생들은 선생님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기 전, ‘선생님이 인사 안 받아 주면 어색할 텐데, 선생님이 나 모르면 어떡하지? 지금 인사하는 게 맞나?’ 같은 걱정이 든다고 한다. 그래서 그날부터 인사를 ‘받아주는’ 선생님보다는 그냥 인사를 ‘하는’ 선생님이 되기로 했다. 인사를 한번 한 사람과는 아는 사람이 되고, 인사를 여러 번한 사람과는 우리가 된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드는 인사는 참 좋다. 그 좋은 인사를 항상 할 수 있는 교사인 것이 감사한 일이다. 강대옥 무거중 교사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