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사정관제 도입에 소수만의 특권
전문기관의 ‘고등학생 인턴’ 생겨나
‘창의인재 선발’ 취지 퇴색된 지 오래

▲ 울산의대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인턴이라면 당연히 의사를 일컫던 적이 있었다. 의사 면허를 취득하고 수련을 시작한 첫 해를 인턴 과정이라고 한다. 업무 특성상 진료 현장에서 일해야 배울 수 있다. 도제 교육의 전통이다. 업무를 시작해서 한 달간 익숙해지면 다른 과로 옮겨가니 긴장과 이별의 연속이다. 향후 전공 분야도 확정되지 않아 병원에서 마음 둘 곳이 없다.

30년 전 인턴은 어땠을까? 병원 인력이 부족한 시절에 인턴은 선배 의사를 보조하며 만능 해결사 역할을 했다. 힘든 일, 궂은 일은 인턴 몫이다. 수술 준비와 검사 결과 챙기기는 기본. 앰뷸런스에 동승해서 밤새도록 수동식 인공호흡기를 쥐고 임종하는 환자를 지방에 보내고 와서는 새벽 근무를 시작했다. (당시에는 집에서 임종하길 원하는 분이 많았다.) 근무와 당직근무가 이어지니 일주일 이상 계속 근무하기 일쑤였다. 임상 경험은 초보지만 인턴이 뒤에서 받쳐주니 병원은 든든했다. 오죽하면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이라는 유행어에 ‘인턴에게 시키면 된다.’라고 말했을까.

당시 인턴은 농담조로 자신을 삼신(三神)이라 불렀다. 제 때 식사를 못하니 먹을 때만 되면 ‘걸신’이요, 틈만 나면 졸리니 잠자는데 ‘귀신’이요, 진료 업무를 겨우 익힐 만하면 새 업무를 맡게 되니 일하는데 ‘등신’이었다. 그래도 인턴을 마칠 때면 힘든 만큼 임상 능력과 자신감이 생겼다.

요즘 인턴은 어떨까? 병원 업무가 분화되고 전산화되어 잡일이 줄었다. 최근에는 전공의 특별법으로 근무시간도 주 80시간으로 제한되어 전보다 일하기 나아졌다고 해도, 주 52시간 근무제가 보편화된 다른 직종과는 거리가 멀다. 여전히 힘들게 일하면서 배우는 인턴의 본질에는 변함이 없다.

의사 이외의 직종에도 인턴이 있음을 알게 된 건 백악관 인턴과 클린턴대통령의 스캔들이었다. 우리나라도 금융위기 이후 인턴사원이 등장하더니, 청년실업 문제로 인해 정부가 임금을 지원하는 청년인턴제도도 생겼다.

그런 와중에 고등학생 인턴이 슬그머니 생겨났다. 일하면서 배우기보다는 심부름과 견학이 주된 활동인데 인턴이라고 이름붙이니 근사해 보인다. 봉사는 보람을, 알바는 금전 보상을 얻는다면, 고등학생 인턴은 무엇을 얻기 위함인가? 바로 인턴경력증명서다. 대학입시 스펙으로 쓰기 위해서다. 정 안되면 ‘인턴십 활동 예정증명서’라도 얻어낸다. 일정 기간 인턴으로 근무하겠다는 약속만으로 예정증명서를 발급한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 이게 가능하다면 나도 직장에 정년까지 열심히 근무하겠다고 말하고 정년퇴직예정증명서를 신청해볼까 한다.

이런 사달이 벌어지게 된 건 성적위주의 획일적 평가를 지양하겠다며 도입된 입학사정관제 때문이다. 입시제도에 2007년부터 새롭게 열린 기회의 틈새는 많은 학부모를 시험에 들게 하였다. 일부는 제도를 탓하기 어려울 만큼 상식선을 넘어섰다. 인문계 고등학생이 유엔인권정책센터, 서울대 공익법인권센터,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등 쟁쟁한 전문기관에서 무슨 역할이 있을까? 이들 기관에 도움이 되는 인턴십이라면 이후에도 존속했을 것이다. 소수가 특권으로 그런 기회를 가졌다면 내세우지도, 입시에서 모르는 척 받아주지도 말아야 했다.

이젠 외부 경력을 못 쓰도록 제도가 바뀌었지만, 대학입시 스펙으로 인턴 경력과 논문 실적을 강조하던 위선의 시절이 있었다. 당시 번쩍거리는 스펙이 없어 주눅 들던 지원자에게 이렇게 일러주고 싶다.

면접관이 인턴 경력에 대해서 묻거든 이렇게 답하라. “인턴이란 무엇인가?” 면접관이 당황하여 자신이 입시사정관임을 강조하면 이렇게 답하라. “도대체 입시사정관제란 무엇인가?” 혹시라도 인내심 많은 면접관이 새로운 입시제도가 지원자의 창의성과 리더십을 보려는 취지라고 설명하면, 세계선도인재답게 솔직하고 당당하게 답하라. “창조건, 평화건, 공정이건, 내세우는 취지와 현실은 다르다. 방금 말한 취지라면 창의적으로 질문자와 답변자를 반전하며 면접을 리드하는 인재상이 바로 앞에 있지 않는가?”

울산의대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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