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이라고 해서 모두 진실은 아냐
조국사태 왜곡·은폐 벗고 진실 밝혀야
모호한 사회로 인한 불안감 없어진다

▲ 정명숙 논설실장

‘팩트 체크’라는 단어가 홍수다. 정치권과 언론은 연일 팩트(사실)를 체크해서 알려준다고 야단들이다. 언론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말들을, 그것도 각계 전문가까지 불러내 마구 쏟아내고 있다. 이미 두동강이 난 정치권은 제각각 자기 편에 유리한 팩트만 끼워 맞춘다. 군중 속으로 뛰어들어 직접화법으로 목청을 돋우기도 한다. 심지어 정부가 발표한 ‘8월 고용동향’과 ‘2분기 가계동향’이라는 통계자료조차 누가 가져다 쓰느냐에 따라 나라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도(문재인 대통령 16일 수석·보좌관 회의 모두발언)” 하고 “파탄 지경에 이르기도(조지연 자유한국당 부대변인 논평)” 한다. 그들과 직접 접촉하는 언론도 정치적 이념을 좇아 거기에 맞는 문장들만 기록한다. 그래놓고는 모두들 팩트라고 한다.

거짓 아닌 사실이라고 모두 진실은 아니다. 진실은 ‘왜곡이나 은폐나 착오를 모두 배제했을 때 밝혀지는 바’를 말한다. 팩트체크는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욕망에 맞춰 아전인수(我田引水)로 끌어들이면 왜곡과 은폐가 되기 마련이다. 집권욕이든 대권욕이든 그들의 눈을 가리고 있는 야욕(野慾)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진실에 다가설 수 있다. 진실을 제대로 알리고, 국민이 그 진실에 공감할 때 ‘나라다운 나라’가 된다. 그런데 진짜 진실을 알고 있을 법한 그들이 한결같이 맹인모상(盲人摸象 장님 코끼리 만지기)이다. 코끼리라는 진실을 두고 ‘삼태기’라고도 하고 ‘절구’라고도 하며 그게 팩트라고만 우긴다. 어쩌랴. 때론 수많은 팩트들이 되레 단 하나인 진실을 덮는 걸. 오리무중(五里霧中), 진실을 알 수 없는 모호(模糊)한 사회가 되어간다. 모호함은 불안의 시작이다.

심리학에서는 인간이 가장 싫어하는 심리상태가 불안이고, 그 불안은 모호한 상황에서 극대화한다고 한다. 대니얼 엘즈버그(Daniel Ellsberg)는 “어떤 일의 발생 확률을 잘 모를 수록 이를 위기로 인식하고 불안감과 불쾌감이 증폭된다”면서 “잘 알려진 것을 선택하거나 추구하면서 이러한 불안감을 감소시키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했다. 불안을 떨치기 위해 모호함을 기피하고자 하는 본능이 우리를 어느 편에든 서도록 강요하고 있다. 내편은 무조건 정의이고, 남의 편은 무조건 불의라 몰아세운다. 정치인들이 만들어놓은 모호한 상황이 우리 사회 전체를, 단지 정치적 기준으로 두동강이를 내고 있는 것이다. 대니얼 엘즈버그는 “무작정 모호하지 않은 것을 취하거나 선호한다면 이는 결코 올바른 판단으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했다. 방향성 있는 동기가 발생하여 의미 있는 행동으로 옮겨 갈 때 비로소 불안도 해소되고 긍정적인 결과도 기대할 수 있다. 방향성 있는 동기의 제공, 이것이 바로 정부가, 정치인들이 해야 할 일이다. 특히 이 시국엔 야당이 반드시 해내야 하는 일임에도 연일 구호만 외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마침내 23일 서울중앙지검은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자택까지 압수수색했다. 조국 장관은 자식일과 관련해서는 ‘철저하지 못했다’며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동정을 호소했다. 사모펀드와 웅동학원의 돈과 관련해서는 ‘몰랐다’로 일관한다. 이게 팩트란다. 하지만 국민들이 알고 싶은 것은 ‘그의 팩트’가 아니다. 조작과 청탁, 편법과 불법에 대한 진실이다. ‘검찰은 검찰이 해야 할 일을, 장관은 장관이 해야 할 일을 해나가면 된다’는 대통령의 인식도 국민의 눈높이와는 차이가 크다. ‘군자가 밝은 곳에서 죄를 얻지 않으려면 먼저 어두운 곳에서도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채근담)’고 했다. 그것도 그 어느 자리보다 준법정신과 도덕성은 물론 진실추구와 진정성이 요구되는 법무부 장관이 아닌가. 옳은 사람이라야 옳은 일을 할 수 있는 법이다.

정명숙 논설실장 ulsan1@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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