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수 전 울산중등수석교사

풍속화(風俗畵)란 그 시대의 삶의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풀이된다. 또한 풍속화에는 김홍도의 풍속화 뿐 아니라,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와 김득신의 풍속화도 있다. 그 중 단원 김홍도의 ‘서당’이라는 풍속화를 음향(飮香)해 보면 학동이 훈장님께 회초리를 맞고 울고 있는 장면이 있다. 숙제를 다 하지 못한 이유가 담겨있는 듯하다. 회초리로 때린 훈장님의 안타까운 표정도 담겨있다. 현대교육에서는 이 장면이 적폐대상이다. 훈장님의 오른편에는 마르지 않은 먹물이 보인다. 뚜껑이 열려있는 것으로 보아 현재 사용 중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그림이다. 먹통은 사용하지 않으면 덮어두는 것이 상책이다. 움직일 때 넘어지면 옷을 버린다. 아니면 소매를 버리는 경우도 생긴다.

그리고 훈장님의 책상 아래 돌돌말린 책이 한 권 보인다. 평소 들고 다녔던 흔적이다. 서술평가서로 추측된다. 이 장면 다음에는 어떤 장면이 될까? 여러가지로 추측하는 것도 창작이다. 필자의 추측은 이렇다. ‘개똥이 오늘도 천자문을 다 읽지 못했음’ 현대교육에서 이것을 과정평가, 그리고 서술평가라고 한다. 우리가 말하는 평가는 석차 몇명 중 몇 위, 대학지원시 학교생활기록부 몇 등급. 상대평가의 형식이다. 수, 우, 미, 양, 가, 5단계 평가방식이다. 수능점수 몇점, 교과점수 몇점 만점에 몇 점 절대평가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숫자와 단계를 기록하는 방식이다.

추석연휴 마지막 즈음, 폰이 울렸다. “친구야, 학교에서 일 년에 상장을 104개나 발행한단다. 이것이 가능한 일이가? 그래도 되나?” 법무부장관 청문회에 관심이 많은 친구다. 대학지원시 높은 평가를 받으려고 많은 보조자료를 함께 제출한 듯하다. 또한 학교에서 실시한 대회 상장만 인정한다고 하니 나온 결과로 본다. 진학을 앞 둔 자녀의 부모입장은 이해가 될 듯하다. 교육계에서는 사교육을 줄이려고 토·일요일을 활용해 특별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과목을 초월한 융합교과이다. 운영방법은 지역공동체 대표학교에서 주변학교 교사를 강사로 초빙, 프로그램에 관심있는 학생들이 지원한다. 필자도 재직시 근무지가 아닌 학교에서 이 프로그램 운영에 참여했다. 주제는 ‘미술이 수학을 만나다’ 하루 네 시간씩 일주일 여덟 시간, 그러나 날마다 학생들의 개별학습활동 과정을 서술평가식으로 작성했다. 학교장 직인없이, 나의 교원번호와 서명만 있었다.

이때 내가 지도한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이 명문대학에 합격했다고 인사하러 왔다. 학생은 학습 산출물과 함께 내가 작성한 과정평가서도 제출했단다. 대학지원시 면접관에게 집중 질문을 받고 막힘없이 대답했으며, 시간을 넘어선 공방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말이다. ‘자신이 지원한 전공에 얼마 관심이 높은가’를 진단하는 면접인 듯하다. 이런 서술평가서와 과정평가서를 통해 이 학생이 어떤 종목에 관심이 있는지 진단하는 자료로 활용된다. 그러나 생기부에는 서술평가자료는 기록하지만 종합의견란은 출력되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봉사활동 증명서, 체험학습인정서, 협동학습과정서라는 것들이 지원학생의 보조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보조자료가 많을수록 점수가 높다는 것은 아니다. 입시면접관은 이런 보조자료들을 분석해 필요한 부분들을 선정하고 질문하며 토론하는 과정을 거친다. 결정권한은 대학측에 있다. 그러나 방송에서 제기된 백여 장의 숫자는, 일주일에 한 장씩, 그리고 방학 중 시간을 쪼개 활동하면 가능한 숫자이다. 학교장 직인이 들어가면 상장 인플레로 오해받기 쉽다. 그래서 평가방법도 연구와 토론을 거쳐야 한다. 지도교사의 교원번호와 근무학교가 적힌 의견서(평가서)도 존중되어야 한다. 붉은 색의 큰 도장이 있어야만 인정되는 현실이 아쉽다. 그놈의 도장때문에 말썽이다. 이런 일을 계기로 체험학습과 봉사활동이 위축되지 않았으면 한다. 박현수 전 울산중등수석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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