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익근 울산향교 장의 전 학성고등학교 교장

추석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니 아파트 편지함에 우편물이 한 통 있었다. 향교에서 온 것이라 즉석에서 뜯어보니 추기석전대제를 알리는 통지문이었다. 울산향교(典敎 이동필)에서는 공부자(孔夫子)를 주벽(主壁)으로 25위의 위패를 모시고 춘추(春秋)로 두 번 석전대제를 올린다. 봄날 춘기대제는 공자님 돌아가신 날인 5월11일에 올리고, 다가오는 9월28일의 추기대제는 공자님 탄신일을 기려서 봉행(奉行)하는 의식이다. 금년은 공자 탄신 2570주년이다.

석전(釋奠)은 유교 의식 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가장 규모가 큰 제례여서 석전대제(釋奠大祭)라고 부른다. 석전대제는 중국이나 동남아국가보다 우리나라가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고 있으며, 인의예지(仁義禮智)를 근간으로 하는 유학(儒學)을 발전시킨 대표적 성현과 현인들의 학덕과 공적을 기리기 위해서 봉행되는 큰 제례의식(祭禮儀式)이다.

석전의 3대 요소는 제사의 대상인 신위(神位), 제사를 드리는 헌관(獻官) 그리고 신에게 바치는 제물(祭物)로 이루어진다. 즉 제례는 제관이 제물을 신에게 올려 신과 교감하는 의식이다. 향교의 중대사인 석전대제를 정성을 들여 엄숙하게 치르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우리 향교에서는 한 달 전부터 석전대제를 준비해오고 있다. 지난 8월27일 원로와 수석장의 회의에서 헌관 천망(薦望)을 필두로 9월5일 장의(掌儀)회의에서 석전 추진일정이 수립되어 지금은 일정에 따른 세부계획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석전대제는 행사 이틀 전의 습의(習儀:예행연습)와 전일(前日) 치제(致祭)에서 최종점검을 거쳐 행사 당일인 9월28일 오전 10시에 화려하면서도 엄숙 경건하게 봉행된다.

석전대제에서 신위를 모시는 대성전(大成殿)의 주벽(主壁)은 공자님으로 대성지성문성왕(大成至聖文聖王)이시다. 그리고 소목(昭穆 : 신주를 모시는 순서, 동편을 昭 서편을 穆이라 한다)에 따라 사성(四聖)이신 복성공 안자(復聖公 顧子) 종성공 증자(宗聖公 曾子) 술성공 자사(述聖公 子思) 아성공 맹자(亞聖公 孟子)가 중앙에 안치되고 그 외 동서위에는 송조(宋朝) 2현 정자와 주자, 신라조 2현 설총과 최치원, 고려조 2현 안향과 정몽주, 조선조 이이, 이황을 비롯한 14현 등 도합 25위가 배향(配享)되어 있다.

그리고 대제에는 의식(儀式)에 참여한 모든 제관들을 대표해 헌작(獻爵)을 올릴 헌관(獻官)이 필요하다. 헌작은 격식에 맞춰 신에게 술을 올리는 의식이며 그 일을 수행하는 사람을 헌관이라 부른다. 헌관은 학식과 덕망이 높은 사람들 중 원로회의에서 추천되고 장의(掌儀) 회의에서 최종 승인된다.

헌관은 삼헌(三獻)의 예에 따른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과 또 종헌관 헌작시 동서위에 헌작할 분헌관 2명이 더 필요하다. 초헌관은 석전대제를 주관하는 덕망 높은 대표인물이다. 또 축문을 읽는 대축, 진설을 하는 장찬자, 술을 따르는 사준자, 창홀을 하는 집례 등 그 외 여러 명의 집사들이 더 필요하다. 이들은 제각각 맡은 임무를 성실히 수행해 제례를 빛나게 만드는 조연(助演)들이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시민들에게 알리고 싶은 게 하나 있다. 유교(儒敎)는 종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무릇 종교란 죽은 뒤의 세상, 즉 천당이나 극락세계를 예견하고 그걸 반드시 믿게 만든다. 그러나 유교에는 내세(來世)에 관한 얘기가 전혀 없다. 종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유교의 근간은 인(仁)이며 인은 사랑이다. 유교는 나의 삶과 나의 행동이 남을 편안케 만드는 생활양식이며 학문이며 철학이다. 향교는 조선시대 각 지방에 설립된 공립 중등학교였다.

향교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 하나는 인재양성을 위한 교육기능이요 다른 하나는 성현들을 기리는 제향(祭享)기능이다. 그러나 갑오경장 이후 신교육이 실시되면서 교육 기능의 역할은 많이 줄어들고 대신 제향기능만은 오랜 전통으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향교는 종교시설이 아니고 학교이기에 울산 시민 모두가 향교의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즐길 수 있다. 특히 9월28일 추기석전대제에 많은 시민들이 참관하기를 권한다. 우리 향교에서 봉행되는 석전대제는 시민들과 함께하는 축제가 되고 싶다. 그 날 우리는 화이불치(華而不侈 :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음)한 석전대제의 멋진 퍼포먼스를 만끽할 수 있을게다.

김익근 울산향교 장의 전 학성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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