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울산시가 야심차게 준비한 프롬나드페스티벌이 태풍 타파가 예고된 가운데 강행을 하다가 하루만에 폐막을 한 것도 의아한데 36개의 공연작품 가운데 16개가 ‘2019 과천축제’와 똑같은 작품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솔직히 어이가 없다. 결과적으로 예고된 태풍 속에서 연기가 아닌 강행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과천축제 일정(26~29일)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니 약 8억원의 예상낭비도 속상하지만 속은 기분에 자존심마저 상처를 입게 됐다.

프롬나드페스티벌은 지난 20일부터 22일까지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태풍 타파로 인해 20일 하루만에 막을 내렸다. 천재지변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막무가내로 강행을 해서도, 이틀간의 공연을 대책없이 취소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애초부터 노천공연만으로 수억원이 들어가는 축제를 기획하는 것도 무리이지만 우천시에 대한 대안을 마련해놓지 않았다는 것도 말이 안된다.

게다가 올해 23회에 이르는 과천축제가 바로 잇달아 열리는데다 과천축제의 감독과 울산프롬나드페스티벌의 감독이 그동안 많은 일을 함께 해왔다면 당연히 프로그램을 꼼꼼하게 점검했어야 했다. 두 축제의 개막작이 똑같고 프로그램의 절반 가까이가 똑같은데 “거리가 멀어 관객이 겹치지 않으므로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거나 “개막작은 같은 줄 알았으나 16개 작품이 같은 줄은 몰랐다”는 것은 무책임의 극치다.

프롬나드페스티벌의 실패는 사실상 예고돼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다. 새로운 지방정부가 들어서면서 오로지 ‘바꾸는 것’에 목표를 두고 너무 서둘러 만들었기 때문이다. 문화행사, 특히 지역축제는 정체성과 독창성이 생명이다. 지역주민들의 화합과 격려가 목적이라면 모를까 적어도 시예산을 들인 대표축제를 염두에 둔 행사가 아닌가.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정체성과 독창성을 파악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고 그것을 문화행사로 표출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프롬나드(promenade·산책)라는 낯선 외국어로 된 제목만으로 마치 새로 만들어낸 축제인양 포장을 하려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외국과 다른 도시의 공연물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해놓고는 국가정원 지정과 더불어 관광객을 불러모으는 마중물이 되리라 기대했다면 애초에 어불성설이다.

‘당신은 시를 어떻게 쓰는 지 알지만 나는 왜 쓰는지 안다.’ 상징주의의 거장 폴 베를렌에게 아르튀르 랭보가 한 말이다. 이 도발적인 반론은 예술가와 문화예술의 존재 가치를 말해준다. ‘왜’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찾지 못한 문화예술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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