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범상 울산대 명예교수·실용음악도

어린시절 꾸었던 원대한 꿈들
나이 들면서 현실을 살아가며
인생은 포기의 과정임 깨달아
불가항력일 땐 깨끗하게 접고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게 옳아
풍요로운 자유대한민국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꿈
요즘 그 길에 먹구름 낀듯 갑갑
위험을 자초하는 내부문제로
소중한 꿈 포기하는게 순리일까

제목이 우울한 철학적 질문이라, 혹시 꿈을 버리고 노력도 하지 말라는 운명론(運命論)에 대한 찬양내용은 아니다. 특히 ‘포기(抛棄)’라는 단어가 현실회피나 죽음을 미화·동경하는 비관주의(悲觀主義)나 염세주의(厭世主義)적으로 해석되기를 원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인간이 꿈을 갖는다는 것은 진실로 중요하다. 아니 100년을 살고계신 김형석 교수도 ‘나이가 많은 사람이 늙은이가 아니고 꿈이 없는 사람이 늙은이다’라고 강조하지 않던가. 다만 꿈을 갖되, 그 꿈이 허황된 것이고 이루어질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판단이 섰다면 두려워말고 변화의 길을 모색하자는 것이 이 글의 골자이다. 어찌 보면 ‘인생 자체가 꿈의 축소화·현실화 과정이 아니던가’라는 것이 나의 결론적 고백이다. 소확행(小確幸)을 가져다주는 것은 불확대몽(不確大夢)이 아니라 소확몽(小確夢)인 것이다

19세기 중엽, 미국의 남북전쟁시대, 저명한 화학자요, 생물학자인 윌리엄 클락(William S. Clark)의 말은 너무도 유명하다. ‘Boys be ambitious!’ 우리말로 하면, ‘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란 뜻이다. 그때만 해도 여성의 정치참여가 불허될 정도로 남녀차별이 심한 시대였던지라, girl(소녀)은 교훈의 대상에서조차 제외되었었나 보다. 1950~60년대 초, 나의 학교선생님들은 물론, 부모, 친지 모두가 어린이들에게 하는 말은 ‘원대한 꿈을 가져라. 꿈은 클수록 좋다’였다. 그래서 그랬던지 나의 어렸을 적 꿈은 대통령이었다. 나 뿐 아니라 우리 반 아이들 90명 거의 전원의 꿈이 대통령 아니면 UN사무총장이었다. 그러나 그 꿈은 너무도 허황되고 이룰 가치도 없다는 사실을 아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높은 지위와 막강한 권력, 대대손손 남을 가문의 영광은커녕, 그 정점을 향해 가는 동안 더러운 흙탕물 속에서 사생결단의 쟁투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고, ‘국민이 원하면 대통령을 그만 둔다’는 말과 함께 비행기 트랩을 오르던 이승만 대통령의 슬픈 모습은 나의 꿈을 접게 하는데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내 인생 첫 번째 포기였다.

그 후 나의 꿈은 과학자로 성장하여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우리 반 친구들 중 반 정도가 나와 같은 꿈을 꾸었다. 196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외국의 저명대학에서 이·공학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으면 신문의 1면 톱기사로 장식되던 시절이었다. 노래를 잘한다고 교내에 소문이 나면서 유명가수가 되는 것도 새로운 꿈으로 추가 되었다. 야구를 좋아하면서 이 또한 꿈에 포함되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실제로 이런 꿈을 여러 번 꾸었다. 동대문야구장에서 벌어지는 국가대표 야구 한일전을 아나운서가 중계방송을 한다. ‘한국의 마지막 공격입니다. 9회말 2아웃에 만루, 스코어는 3대 6, 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홈런 한방이면 대역전극이 펼쳐집니다. 4번 타자 윤범상 선수 오른쪽 뱃터복스에 등장했습니다. 비장한 얼굴입니다. 국민들이 손 모아 윤 선수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아, 그런데 윤 선수가 지난달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으러 스웨덴에 다녀왔다지요? 매우 피곤하겠습니다.’ 해설자가 덧붙인다. ‘아 예 그렇습니다. 노벨상 역사상 가장 젊은 수상자라고 세계적으로 평판이 자자합니다. 거기다 다음 주에는 시민회관에서 단독 리사이틀이 있어서 요즘 아주 바쁘고 힘들 겁니다.’ 그리곤 아나운서가 다시 중계를 잇는다. ‘투 스트라이크 쓰리 볼, 이제 주자들은 무조건 뜁니다. 일본투수 던졌습니다. 윤 선수 방망이가 돌았습니다. 좌중간으로 높이 쭉쭉 뻗어가는 공…. 담장을 넘어 갔습니다. 역전만루홈런입니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었다. 그 후에도 나는 내 동기나 나보다 어린 사람의 성공스토리를 접할 때마다 부러워했고 조금은 괴로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꿈은 꿈일 뿐이란 사실,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나 자신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바람직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국 노벨물리학상 대신 공과대학 교수로 만족해야 했고, 국가대표 야구선수의 꿈은 대학시절 단과대학 대표선수 정도에 머물렀다. 마지막으로 남았던 가수의 꿈은 은퇴 후 뒤늦게나마 실용음악학과에 진학하여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노래를 집안에서 꿱꿱대며 자위(自慰)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렇다. 인생은 포기의 과정이다. 끈질기게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도래했을 땐 깨끗하게 포기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횡단보도를 건너려하는데 파란불이 깜빡깜빡 걸음을 재촉하면 뛰어서 건너기를 포기하고 다음번 신호를 기다리는 것이 안전하고 정신건강에도 좋듯이.

그러나 우리에겐 절대로 축소하거나 포기하지 못할 너무도 소중한 꿈이 하나있다. 영원토록 안전하며 풍요롭고 번영된 자유대한민국을 향한 꿈,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2019년 지금, 이 꿈을 향한 우리의 앞길에 먹구름이 잔뜩 끼여 있다. 이 위기가 정당한 이유 없이 순전히 외부로부터 발생한 위협 때문이라면 목숨까지 걸고라도 싸워 반드시 이겨내야겠지만, 혹시 우리 내부문제 때문인데도 위정자가 이를 모르던지, 알고도 고의로 위험한 길을 고집하며 가고 있다면 과연 이 소중한 꿈마저 포기하는 것이 인생의 순리(順理)이련가? 윤범상 울산대 명예교수·실용음악도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