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인 지난 28일 울산항 염포부두에서 발생한 석유제품운반선 화재는 그야말로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울산시민 모두가 불안에 떨만큼 대형 폭발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사망자가 1명도 없었고 추가 폭발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2~3일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했던 화재진압도 18시간30분만에 진화했다. 화학물질이 완전히 타야 할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빠른 시간에 진화가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불안감이 완전 가신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 화재원인을 밝혀내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선체내부에 아직도 유독화학물질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태풍 ‘미탁’이 올라오고 있어 조사가 늦어질 수밖에 없는데다 유독물질이 바다에 흘러들어갈 가능성도 높다. 사고선박에는 아주 강한 독성물질인 스티렌모노머(SM)를 포함한 석유화학제품이 14종 2만7000t이나 실려 있다. 울산소방본부는 “스티렌모노머가 계속 나오고 있으나 추가폭발이나 화재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지만 화재시 발생한 유독가스가 가득차 있는 선박에서 태풍이 지나가고 조사·처리가 완료될 때까지 무슨 사고가 일어날지는 모를 일이다. 진화작업 도중에도 2차, 3차 폭발이 있었다.

문제는 울산항의 재난 대응력이 근본적으로 매우 미흡하다는 것이다. 울산항은 연간 2억t의 물동량 중 약 80%인 1억6000만t이 원유·석유정제품 등 액체화물일 정도로 위험물질 취급비중이 높은 항만이다. 드나드는 선박만도 연간 2만3000여척으로 항만이 항상 혼잡(체선율 2%대)하다. 울산항 배후권역에는 위험물 저장탱크가 수두룩하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선박화재 진압 전용 선박 한척이 없다. 이번 폭발사고 때도 부산의 지원을 받았다. 부산에서 울산까지 이동하는 데는 4시간이나 걸린다. 더구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 울산화학재난합동방재센터는 2014년 개설 이후 센터장이 5년째 공석이다.

국가공단이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인데도 산재병원도 이제서야 설립계획 중이고 화상진료센터도 없다. 때마침 근로복지공단은 30일 화상인증병원을 전국 4곳(한강성심병원, 베스티안 서울병원, 하나병원, 베스티안 부산병원)에서 5곳(대구 광개토병원, 광주굿모닝병원, 청주 베스티안 베스티안병원, 전주 예수병원, 진주 제일병원)을 더 늘렸다고 발표했다. 울산은 빠졌다. 최근 5년간 전국 산업단지에서 발생한 사고가 134건인데 이 중 울산이 29건으로 가장 많았다. 울산은 항만이나 공단에서 대형사고가 발생해도 기적만 바라고 있어야 하는 실정이다. 사고 진압이나 환자 치료, 어느 하나 기본적 대응체계도 마련돼 있지 않으니 말이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