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현 남목중 교사

2017년 3월. 새 학기를 시작하자마자 나눠줬던 자기소개서 한쪽의 모서리 칸. 천편일률적으로 써낸 장래희망 속에 튀는 단어가 하나 있었다. “유튜버”. 상담을 하다가 이게 뭐냐고 물으니 대뜸 대답한다. “아, 샘. 유튜브로 동영상 찍어서 올리는 사람들 있잖아요. 저도 그거 하고 싶다고요.” “이게 직업이야?” “네. 잘만 하면요. 돈 진짜 많이 벌어요.” 순간, 녀석은 수 년 후 유명한 유튜버가 되어 있는 상상에 빠진 듯 입가를 살짝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2018년 3월. 방과 후 교실 청소를 위해 몇몇 아이들과 남아 있던 시간. 평소 말수가 적던 한 아이와 둘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OO이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 “크리에이터요.” “크리에이터가 뭐야?” “유튜버랑 비슷한 거요.” “왜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어?” “멋있으니까요!” “그래, 크리에이터가 멋있어 보이는구나.”

2019년 9월. 우리 반 스물여덟명 중 유튜버를 꿈꾼다고 말한 아이는 두 명이다. 한 명은 현재 유튜브 게임방송을 시작해 수시로 영상을 업로드하고 있다. 다른 한 명도 게임을 좋아하고 잘 하니까 게임 유튜버가 되고 싶다고 했다. 교실에서 찰나의 순간을 함께하는 담임은 ‘앞으로 유튜버가 되고 싶다고 하는 아이들이 점점 많아지겠구나.’라고 관망할 뿐이지만, 컴퓨터 앞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학부모의 마음은 불안하기만 하다. 이 같은 꿈이 지속가능한 건지, 다른 아이들도 이런 꿈을 꾸는 건지. 담임에게 이러한 고민을 토로해 봐도 뾰족한 답을 찾기는 어렵다. 유튜브는 4차 산업혁명을 이끌고 있는 플랫폼이니 학습이 좀 부족하더라도 아이를 믿고 무조건적으로 지지해 주라는 투의 듣기 좋은 꽃노래만 부를 수는 없다. 그래서 유튜버를 꿈꾸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성공한 유튜버가 되려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해본 후에 깊이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너의 영상을 더 좋아할 것이다.”라고. 방송 영상 만든다는 핑계로 학교 공부를 등한시하면 절대 안 된다는 잔소리도 꼭 곁들인다.

그동안 아이들이 진지하게 어떤 직업을 희망한다고 할 때면 늘 물어 왔다. 실제로 해보면 그 일이 정말 힘들 수도 있는데,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그 일을 할 자신이 있느냐고. 수 년 간 같은 직업을 가지고 싶다고 꿈꿔온 아이들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그렇다고 답하는 경우가 많다. 유튜버를 꿈꾸는 아이들에게 이 질문을 하지 못했던 건 내가 그동안 아이들의 희망을 10대의 치기로만 여겼기 때문이다.

고리타분한 구시대의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담임이기에 여느 학부모처럼 아이들이 10년 후, 20년 후에도 유튜버를 꿈꾸고, 또 유튜버를 하고 있을까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유튜버는 이미 ‘대세 직업’이 되었고, 더 많은 아이들이 유튜버가 되기를 꿈꿀 것이다. 이제는 유튜버를 꿈꾸는 아이들에게도 물어봐야겠다. 누가 뭐라고 해도, 자리 잡는 과정이 예상보다 많이 어려워도 그래도 유튜버가 되고 싶냐고. 흔들리지 않고 유튜버가 되기를 꿈꾸느냐고. 만약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아이들이 더 구체적으로 자기만의 꿈을 그려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겠다. 구독 버튼도 꾹 눌러주겠다고 약속하면서 말이다. 이정현 남목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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