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의 선물’ 배 - 시원하고 달콤한 배를 ‘신의 선물’이라고 했다. <세종실록지리지>는 배를 울산의 토산물로 기록하고 있다. 노란 색 껍질 속에 하얀 과육이 풍성하게 들어 있는 배. 그 달콤함과 풍요로움이 마치 한가위를 상징하는 과일인 듯하다. 사진=김동수 경상일보기자

나도 모르게 새겨진 추억의 시계
바늘이 가리키는 곳에는 어김없이
배 밭이 있고 일하는 어머니가 있어

배 한 알이 태어나는 데는
사람의 손길이 오십 번 이상 가야
분주히 움직여야 좋은 결실로 응답

지금도 여천 고개 올라서면
언덕마다 배나무가 보일 듯해
마음이 앞서 가는 곳을
오늘도 나는 따라갈 수밖에 없어

올 추석은 유난히 빨랐다. 차례 장을 보면서 몇 번이고 발걸음을 멈춘 곳은 배, 사과, 밤, 대추 등 가을 과일 앞이다. 내가 빈손으로 그늘을 찾아다니는 동안 제 자리에서 묵묵히 익은 과일들이다. 계절을 따라가지 못한 마음은 허둥지둥 반갑기만 한데, 그 중 잘 익은 배에 눈길이 오래 간다.

유럽 최북단 라플란트 지역 주민들은 자신만의 시계를 숨기고 산단다. 극지의 길고 긴 밤과 길고 긴 백야가 시간의 감옥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고. 그래서 그들은 비밀의 시계가 가리키는 다른 세상에서 숨 쉬고 꿈꾸고 위로 받는다 한다.

내게는 라플란트 주민들처럼 숨겨진 시계는 없지만, 나도 모르게 새겨진 추억의 시계는 있다. 어쩌다 이 시계 바늘이 가리키는 곳을 보면 어김없이 배 밭이 있고, 일하는 어머니가 계신다.

요 며칠 몸속 시계는 과수원집 어린 딸들이 여름을 지나며 오매불망 기다리던 떡배를 가리키고 있다. 나무에 달린 채 익은 과육이 아이스크림처럼 혀끝에 감기던 떡배와 장심랑과 어머니가 시침 끝에 있다.

첫 배 익을 무렵은 추석 즈음이다. 동그랗고 노란 장심랑은 나오자마자 제수용으로 대구로 부산으로 팔려나갔고, 울산 장날엔 동네 배장수들이 큰 대바구니에 담아 마차로 실어 내가기도 했다. 이 무렵 소풍날같이 들뜨는 날이 있었는데, 그것은 ‘배서리’였다. 추석에 만난 가족, 친구, 연인들이 장터 서커스 공연이나 태화강변 모래사장의 씨름 구경도 시들해지면 삼삼오오 배 밭으로 찾아와 손수 배를 달아보기도 하고, 배나무 아래나 평상에 앉아 깎아 먹고 놀다 돌아갔다.

이것은 알록달록한 양산을 쓰고 뾰족구두 신은 예쁜 여자들과 함께 온 신사들이 신기해서 문 뒤에 숨어 보던 어린 시절 이야기다. 그때 아이들은 하이힐 신은 여자를 보면 양갈보라 불렀다. 어른들이 기겁하고 야단쳤지만 육이오 이후 아이들은 하이힐만 신으면 양갈보, 백인군인은 미국놈, 흑인군인은 흑국놈이라 했으니 전쟁의 상흔이 아른거리는 이 시절의 말이 돌이켜 보면 몹시 아프다.

지난 봄 우연히 배 봉지를 씌워놓은 배나무 분재를 보았다. 순간 메말랐던 마음을 촉촉이 적셔주는 따뜻함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울산시 대현면 매암동 산 576번지 내 고향, 주변의 여천 매암 산안마을에 75호 정도의 배 밭이 있었고, 사이사이 능금 복숭아 매실 감 등 과일들이 양념처럼 재배되던 곳이다.

종숙의 기억에 의하면 동경 어느 갑부의 동생 창방(구라가다)이 폐가 나빠져서 정양과 농학을 함께 펼칠 곳을 찾았고, 일본서 나들기 좋고 공기 좋은 울산을 택했다고 한다. 농학박사인 그는 많은 과수목을 시험재배 했고, 가장 성공한 것이 배였다 한다. 물 기운 서린 곳이 배와 생육조건에 맞는다고 장생포에서 멀지 않은 심장식 우리 작은 할아버지와 강위호 어른 과수원 자리에 정착했단다. 배가 성공적으로 재배되자 그는 일본으로 돌아가 이주민을 모아 와서 배, 능금, 복숭아 등 작물을 보급했고, 해방 이후에 우리가 재배하면서 울산 배 시대가 열린 것 아니겠느냐고 말씀하신다.

배 한 알이 태어나는 데는 사람의 손길이 오십 번 이상 가야 한다고 말한다. 겨울부터 가을까지 분주하게 움직여야 굵고 맛있는 결실로 배는 응답한다. 하지만 아무리 잘 지어 놓은 농사도 올해처럼 가을 태풍 한 번으로 엄청난 손실을 입을 때도 있다. 어른들의 한숨과 눈물을 외면한 채 아름답게 미화하고 장황하게 떠드는 나를 어떤 이는 호수에 뜬 백조의 모습만 보고 끝없이 바동거리는 백조의 발을 보지 못하느냐고 나무란다. 감수하고 고개 숙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쩌랴 무슨 조화인지 마음이 자꾸만 그리 시키니.

내가 어릴 때 우리 어머니가 그랬듯 우리 아이들이 감기에 걸리면 배를 꿀에 재워 아랫목에 묻어두었다가 먹였다. 여름엔 더위를 물리치는 배숙을 만들었다. 연암의 허생전과 허균의 춘향전에는 배가 등장한다. 배는 결코 만만한 과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지금 울주배로 알려진 배가 바로 그 유명했던 울산배다. 세종지리지에 소개될 당시 울산배는 당도는 높고 물기는 적고 단단하여 저장성이 뛰어난 배로 기록되어 있다. 그때부터 연중 배가 필요한 모든 곳에 울산배가 톡톡히 한 몫을 해온 셈이다.

지금도 꽃대나루 지나 여천 고개에 올라서면 언덕마다 배나무가 보일 듯하다. 달빛 아래 배꽃 흩날리고, 단풍바다가 장관을 이루던 곳. 이곳에 나는 왜 늘 빚진 기분이 드는지, 짬만 나면 고향 이야기부터 하는지 알 수 없지만 마음이 앞서 가는 곳을 오늘도 나는 따라갈 수밖에 없다.

▲ 심수향씨

■심수향씨는
·울산 출생
·2003년 <시사사> 신인상
·2005년 불교신문 신춘문예(시 부문)
·시집 <중심> <살짝 스쳐가는 잠깐>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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