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군중정치가 법치주의 흔들어
사회갈등은 국회서 절차대로 논해야
타협 통한 갈등 해소가 국가의 책무

▲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행정학

절대 왕정시대와 구분되는 근대국가(modern state)의 특징은 무엇보다 국가권력의 행사가 법과 제도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는 법치주의일 것이다. 근대 이전 왕정 시대에는 절대 권력이 국왕의 뜻대로 행사되었다. 루이 14세의 ‘짐이 곧 국가다’라는 유명한 구절은 절대왕정의 절대적 권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시민사회의 성장에 따라 국가의 공권력 행사는 국민의 대표로 구성된 의회에서 제정한 법률을 근거로 해야 한다는 법치주의와 대의민주주의가 확립되었다. 의회는 근대국가의 출발점이며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모든 사회적 이슈와 사회적 갈등은 의회에서 제정되는 법률과 제도에 의해서 해소되는 것이 민주적 근대국가의 기본 정신이다.

오늘날 한국의 법치주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거리에 군중이 넘쳐나고 있다. 거리의 군중이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상황이 초래되고 있다. 법과 제도는 사라졌다. 장관 한 명 임명을 둘러싸고 나라가 갈라지며 법치주의의 위기가 초래되고 있다. 그것도 법과 정의를 수호해야 할 부처의 장관이라는 점이 더욱 아이러니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치주의 수호의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대통령과 국회는 오히려 법치주의 파괴 상황을 조장하거나 방치하고 있다. 경쟁적으로 길거리 집회 규모를 확대시키며 시민들 간의 대결과 분쟁을 고조시키고 있다. 국내외적으로 거의 모든 여건이 불확실하고 어려운 상황이다. 국력을 하나로 통합해도 어느 하나 극복이 쉬운 과제가 없다. 이런 엄중한 시기에 국민을 쪼개고 나누어 국가역량을 소모시키는 일이 소위 국가지도자들이라는 사람들에 의해 자행되고 있다. 세간에는 나라가 국민을 걱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나라를 걱정하는 세상이라는 탄식이 가득하다. 21세기의 대한민국이 근대 이전의 나라로 회귀하고 있다.

법치주의의 붕괴는 정권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나라의 미래 운명이 달려 있다. 언제까지 법치를 붕괴시키는 거리의 군중정치를 방치할 것인가. 하루 빨리 법치주의의 기본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국회는 최근의 사회적 갈등을 국회 내로 가지고 와서 제도와 절차에 따라 논의해야 한다. 타협과 협상을 통해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 기본 책무인 국회가 이를 방치한다면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 국회에서 논의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사실상 여당을 장악하고 있는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대통령은 여당에게 국회에서 이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여지를 주어야 한다. 더 나아가 대통령이 직접 문제해결에 나서야 한다. 우리나라 현실에서 법치주의 수호와 사회 통합에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은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현재 나라를 이끌어 가는 집권세력의 대표로서 이 상황을 수습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책임자이다. 더구나 대통령은 이번 갈등 상황을 야기한 당사자 중의 한 명이다. 결자해지의 자세로 나서야 한다.

미국에서는 대통령의 역할을 국가지도자, 국군통수권자, 국가경제관리자, 행정수반, 최고 외교관, 정파 지도자 등 대략 여섯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 무엇인가를 묻는 설문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국가지도자(national leader)를 들고 있고 정파지도자(party leader)는 가장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설문이 없었지만 대략 비슷하게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령은 당선되는 순간 특정 정파를 초월하여 국가와 국민을 대표하는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국가지도자라면 당연히 국민들에게 통합의 메시지를 던져야 하고, 이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일체감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드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링컨, 루즈벨트, 오바마 등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대통령들은 예외 없이 국가지도자로서 국민통합에 앞장선 사람들이다. 진정한 지도자는 나라의 미래를 거리의 군중에 맡기지 않는다. 대통령과 국회가 본연의 책무를 다하기를 촉구한다.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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