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성철 울산시교육청 정책보좌관

교육정보화 지원사업을 위해 방문한 부탄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은 개였다. 길에도 건물 계단에도 심지어 차가 다니는 도로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다. 사람이 지나가도 개의치 않고 옹기종기 모여 잠을 청하는 모습도 신기했지만, 그런 개들을 돌아 돌아 오가는 사람들도 신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곳에서는 동물을 도살하지 않는다. 개나 소나 야크나 모두 주인 없이 자유로이 살다가 자연사한다. 우유와 치즈를 얻기 위한 소도 주인만 정해져 있다 뿐이지 방목상태로 자유롭게 살아간다. 심지어 파리와 모기도 쫓기만 하니 모두들 인간과 마찬가지로 천수를 누리다가 간다.

교육학의 오랜 논쟁 중 하나는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 중 어느 것이 더 인간의 성장에 영향을 주는가이다. 정답은 없지만 학계에서는 대체적으로 유전적 배경이 한 개체의 성장과 변화의 범위를 제한하고 그 제한된 범위 안에서 환경적 요인이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본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적대적인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는 이곳의 개나 소를 보면서, 또 학교 폭력이란 단어조차 없다는 이곳 선생님들의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환경적 요인이 생각보다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실감한다.

울산시교육청은 교육정보화 분야에서 국제사회에 기여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기울여왔다. 교류협력국의 부족한 ICT 인프라 구축을 지원하고 교류협력국 교원에게 초청 연수 및 현지 연수를 진행하는 사업이 주 내용이다. 그동안 예멘과 네팔에 대한 교류협력을 성공리에 완수하고 이제 새로이 부탄과의 교류협력을 시작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우리를 맞는 교육부 장관을 비롯한 부탄 관계자들의 태도는 당당하였다. 지원은 받지만 그 지원이 자국민의 행복에 기여치 않으면 언제라도 철회하겠다는 정책에 대한 신뢰도와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보인다. 이 나라는 전통복장을 하지 않으면 관공서에 출입을 할 수 없고 공식 행사에 참석도 하지 못한다. 학교의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면서도 모국어인 종카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상급 학년으로 진급을 하지 못한다. 나라 전체가 금연구역이고 도로에는 신호등이 없다. 차들은 모두 경적을 떼고 다니는지 이곳에 머무는 동안 경적 소리 한 번을 듣지 못하였다.

부탄은 입헌군주정이다. 2008년도에 절대권력을 가졌던 당시 국왕이 헌법개정안을 의회에 제출하였다. 민주주의를 도입하고 의원내각제를 채택하여 대부분의 권력을 수상에게 위임하고 국왕 자신은 상징적 존재로만 남겠다는 안이다. 이를 두고 의회는 국왕이 여전히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반대하고, 국왕은 자신의 권력을 내려놓겠다고 주장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나아가 국왕이 또 제안하기를 의회의 의결로 국왕을 퇴위시킬 수 있는 권한도 신설하자고 주장하였고, 어떻게 그런 조항을 넣을 수 있냐는 의회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결국 관철시켰다고 한다. 숙소 창문 너머에 메모리얼 초르텐이라는 전통양식의 불탑이 하나 있다. 그 불탑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탑돌이를 하는 사람들로 늘 붐빈다. 그들 틈에 섞여 서툴지만 옴마니 반메 홈을 읊조리고 오체투지도 따라 하면서 나는 이곳 사람들의 생활태도와 정신세계에 경외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성철 울산시교육청 정책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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