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용순 울산화학재난합동방재센터 공업연구관

지난 9월28일 오전 10시51분, 울산 동구 염포부두에 정박 중이던 노르웨이 선적 ‘스톨트 그로이란드’호에서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울산대교를 집어삼킬 듯한 시뻘건 불덩이가 100여m 이상 높게 솟구치는 화재·폭발사고가 발생했다. 화재 선박에는 유해화학물질인 아크릴로니트릴과 이염화에틸렌을 포함해 인화성이 높은 스티렌 등의 화학물질 14종 2만7117t이 실려 있었다. 화재·폭발 사고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스티렌이 적재돼 있던 9번 탱크에서부터 폭발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울산시민들은 굉음과 함께 하늘을 뒤덮은 시커먼 연기로 인해 주말 내내 공포와 불안에 떨었다. 2012년 경북 구미에서 발생했던 불산 누출사고의 악몽이 2019년 울산에서 재현되는 듯한 순간이었다.

이 사고로 구조작업 중이던 소방관과 해경 7명을 포함해 총 18명이 부상을 당했지만, 화재 진압에 최소 2~3일간 소요될 것이라던 국내·외 전문가들의 예측과는 달리 18시간30분만에 화재를 완전 진압하는데 성공했다. ‘만약 화재가 2~3일간 지속되었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상상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끼친다. 사고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신속한 화재진압으로 시민의 불편과 불안을 그나마 최소화할 수 있었던 성공요인은 소방-해경-환경 등 국가기관의 신속한 협업과 적극적인 사고대처의 결과가 아닌가 싶다.

선박에서 화재가 발생한 직후 울산광역시 소방본부와 소방청 중앙119구조본부는 사고 대응 2단계를 발령하고 고성능화학차를 비롯한 가용 소방자원을 신속하게 사고현장으로 보내 화재진압과 인명구조를 실시했다. 해경 역시 정확하고 신속한 상황 판단으로 화재진압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대응 초기 울산해경에서 보유중인 500t급 화학방제함과 소방정을 총 동원해 화재 진압을 시도했으나 화세를 제압하는데는 역부족이었다. 이에 남해해양경찰청에서는 1분에 13만ℓ의 물을 살수할 수 있는 부산해경 소속 3001함(3000t급)을 사고발생 4시간 만에 사고현장에 급파해 육상의 소방차량과 양공 진압작전을 펼쳤다.

성공적인 작전에 소방과 해경이 주연이었다면, 환경당국은 사고현장에서 묵묵히 조연 역할을 수행했다. 울산화학재난합동방재센터 환경팀(낙동강유역환경청)은 화재 초기 유관기관으로부터 출동 지원요청이 없었음에도 사고 선박이 화학물질을 적재한 선박인지 먼저 연락해 화학물질 운반선 화재임을 파악하고 신속히 유해가스 측정분석 차량과 현장수습조정관을 사고현장에 급파했다. 현장수습조정관은 긴급구조통제단 지휘본부에서 상주하며 소방 및 해경관계자들에게 화학물질의 물리화학적 특성, 위험성, 사고대응 시 유의사항 등의 정보를 제공하며 화재진압을 도왔다.

불과 7년전 구미 불산 누출사고에서 사고대응의 책임을 회피하며 서로에게 떠넘겼던 그 시절과 달리 이번 염포부두 선박화재는 부처간 협업에 의한 성공적인 진압작전이었다. 염포부두 선박화재 사고 자체는 매우 안타까운 사고였음에 틀림없으나, 그동안 실제상황을 가정하여 유관기관들과 함께 반복된 훈련을 통해 체화된 대응능력이 위기의 순간에 빛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 선박화재 사고를 계기로 앞으로도 관계기관 간 더욱 더 끈끈한 유기적 협업체계를 구축해 모든 기관들이 자연재난·사회재난 가리지 않고 어떠한 재난대응 작전에서도 결코 실패하지 않는 최정예 재난대응 기관으로 발전되어지길 기대한다.

성공적인 협업과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대응은 국민의 안전을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사명이며 숙명이다. 비록 화재 진압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아직까지 불탄 채 부두에 접안되어 있는 ‘스톨트 그로이란드’호에서 시시 때때로 끓어오르는 백색 증기와 여전히 선박 안에 남아있는 화학물질로 인해 시민들이 불안해 하고 있다. 이번 염포부두 선박화재 사고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유해·위험한 화학물질을 대량으로 취급하는 화학시설이 고밀도로 밀집되어 있는 울산시가 화학물질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시민들이 안심할 수 있을 때까지 관련기관의 적극적인 협업과 노력은 지속돼야 할 것이다. 또 각 기관에서는 이번 사고대응 과정에서 도출된 문제점을 다시 한 번 살펴보고 그에 대한 합리적 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한 마음 한 뜻으로 개선의 노력을 경주하여야 할 것이다. 임용순 울산화학재난합동방재센터 공업연구관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