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

1990년 과학계는 특별한 두뇌세포인 ‘공감뉴런(거울뉴런)’을 발견했다. 공감뉴런은 다른 사람의 처지와 관련된 나의 내적 느낌을 주관한다. 영화 속의 슬픔이 허구임을 알면서도 우리는 눈물을 흘린다. 반대로 아무리 슬퍼도 상대 앞에서는 훨씬 더 평온한 척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슬픔을 공감하고 적절히 대응한다. 인간이 적절한 행동을 하는 것은 모두가 공감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러셀 로버츠, 내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세계사 2018).

공감을 통해 슬픔은 줄어들고 기쁨은 배가 된다. 공감능력이 결여된 인간이 사이코패스다. 사이코패스는 4가지 특성(Hare, R. D. 2003)을 갖는데, 첫째는 말 잘하는 엄청난 거짓말쟁이다. 거짓말을 밝혀내면 난처한 기색 하나 없이 새로운 거짓말로 전환한다. 스스로를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믿으며, 이는 그들로 하여금 법 위에 설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믿음까지 갖게 한다. 둘째, 사이코패스는 반사회적 행동이력을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쳤던 행동의 이력들로 가득하며, 일반적으로 사회의 규칙과 법률을 불편하고 불합리한 방해물로 생각한다. 셋째, 두려움을 모른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조작하고 해를 끼치며 사회규칙과 법률을 무시한다. 마지막 특성은 공감의 결여다(크리스티안 케이서스, 인간은 어떻게 서로를 공감하는가, 바다출판사 2019). 공감이 결여된 인간에게서 적절한 행동을 기대하긴 어렵다.

광장은 사회적 삶의 공간이자 공감의 공간이다. 광장에서 기쁨은 배가되고 슬픔은 줄어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광장에서 울고 광장에서 웃는다. 오만한 권력과 비뚤어진 신념은 광장을 타락시킨다. 광장이 타락되면 사람들은 삶의 힘을 잃는다.

공감이 결여된 위선의 광장, 누군가가 사슴(鹿)을 가리켜 말(馬)이라 하니 모두가 말이라 한다. 조롱이자 모욕이다. 분노의 바람은 광장을 흔들었고 위선의 잎은 마침내 떨어졌다. 떨어져 뒹구는 위선의 잎들조차 측은한데 조롱은 그칠 줄을 모른다.

높게 펼쳐진 가을하늘이다. 하늘을 쳐다보며 오늘도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발달시킨다. 공감(共感)은 이렇게 진화된 마음의 산물이다. 우리가 사회적 존재로서 빛날 수 있는 이유도 공감의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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