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다시 늘어나고 있는 자살률은
유명인 모방 일시적 현상만은 아냐
경제곤경 인한 우울증 등 복합 작용

▲ 안준호 울산의대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우리 살림살이는 나아지고 있을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어렵다. 개인마다 형편이 다르기 때문이다. 안정된 직장에서 매달 월급을 따박따박 받고 있는 사람은 살 만하다고 느낄 것이다. 최저임금이 오르고 근무시간이 줄어든 덕도 보았다. 하지만 제도 변화의 혜택에서 소외된 사람은 어떨까? 이들은 경제적 고통을 받아도 공개적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우리’가 사는 현실을 개인이 알기 어려운 이유다. 그래서 객관적 통계수치를 참조하지만 이마저도 해석이 갈라진다. 지난 해 1분기 빈부 격차가 크게 벌어졌지만 문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말했다. 근거를 물으니 당시 경제수석은 ‘전체 근로자 중 최하위 10%만 소득이 감소했다’고 밝혔다. 이 자료에는 정말 어려워진 자영업자와 무직자는 포함되지도 않았다.

통계 자료에서조차 소외된 ‘많은 소수’는 실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정식 통계는 아니지만 진료실에서 많은 분들이 솔직하게 들려주는 경제 현실은 귀기울일 만하다.

불안 증상을 가끔 보이는 40대 독신 여성 A씨는 웬만한 힘든 일도 꿋꿋하게 해내며 살아왔다. 20여 년간 일하면서 간혹 일을 그만두더라도 한두 달 이내에 식당이나 가게 일을 구할 수 있었는데, 작년부터는 일자리를 찾을 수가 없어서 친척 일을 돕고 있다. 부지런히 일하면 얼마든지 살아갈 거라는 평소의 자신감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변했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B씨는 작년부터 온 가족이 나서서 일하는 시간을 늘렸다. 밤 근무를 위해 일주일에 3일씩 일하는 직원을 두 명 고용했다. 한 명의 직원이 지속적으로 근무하면 좋겠지만 주휴수당을 지급할 여력이 없다.

30대 C씨는 몇 년간 공무원 시험을 보다가 포기했는데 2년 전부터 다시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매번 아까운 점수로 떨어졌는데 공무원 채용이 늘어난다는 소식에 다시 도전했지만, 지원자가 엄청 늘어나니 합격 커트라인도 훌쩍 올라가버렸다.

울산의 부동산 경기도 침체된 지 오래다. 오랫동안 중개업을 해오던 한 분은 부업을 시작했고, 다른 분은 전직해서 작은 가게를 열었다. 어렵게 공인중개사 자격을 취득하고 기뻐하던 기억에 쓴 웃음을 짓는다. 울산에서 20여 년간 개인 사업을 해온 분들도 이젠 사업을 접어야 할지 고민이다. 외환위기 때도 이만큼 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일자리 문턱이 높아지자 복지 제도에 관심이 늘고 장애인으로 등록하려는 사람도 늘었다. 자력적응이 어려우니 장애인 구분모집 공무원 시험을 보거나 아예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려는 것이다. 우리 제도의 특성상 일단 수급자가 되면 다시 일을 시작하기 어렵다. 우선 최저임금 상승 후 민간에는 쉬운 일이 별로 없다. 일해서 돈을 좀 벌어도 그만큼 생계급여에서 깎이니 굳이 일할 동기도 없다. 소득이 늘어 수급자에서 탈락되면 나중에 일자리를 잃게 될 경우 다시 수급자 혜택을 받을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

갑작스러운 경제적 곤경은 대응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다른 나라와 비슷한 수준이던 우리나라 자살률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상승한 뒤 경제 위기 때마다 상승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지난달 2018년 사망원인 통계가 발표됐다. 2013년 이후 4년째 줄어들던 자살률은 26.6명으로 2017년 24.3명에 비해 9.5% 늘었다. 김진 통계청 인구동향과장은 “자살이 가장 많이 늘어난 게 지난해 1, 3, 7월인데, 원인을 말하기엔 한계가 있지만 유명인 자살이 영향을 주지 않았나 추정한다”라고 설명했다.(중앙일보 2019.9.24.) 이 설명은 일부 근거가 있지만 혹시라도 ‘자살률 감소 추세의 갑작스러운 반전이 유명인 몇 명의 사망으로 인한 일시적 현상일 뿐 경제 침체와 무관한 것’처럼 여겨질까 우려된다.

자살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경제적 곤경에 처하면 우울증이 생기기 쉽고, 우울증은 경제활동 능력을 떨어뜨린다. 우울하고 비관적 사고에 빠진 이들에게 유명인의 극단적 선택은 위험한 행동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미디어 보도 원칙과 함께 어려운 경제 현실을 돌아볼 때다. 안준호 울산의대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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