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은 체험 필요한 문화적 자극
역사 뿌리 유사하면 입맛이 비슷
이질감 넘어 통합 가능성도 높아

▲ 김상곤 전 울산시 감사관 독일 만하임대학 초빙 연구원

입맛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다. 한솥밥을 먹는 부부도 입맛의 차이로 자잘한 갈등을 겪으며 살아간다. 외식이라도 할라치면 가족들 모두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아내느라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는다. 음식에 대한 개성이 강한 사람들은 이러한 갈등을 피하기 위하여 가족외식을 되도록 자제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도의 취향 차이는 아주 경미한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취향이 독특한 사람도 그 선택의 범위가 한국음식이라는 범주를 벗어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조금 더 나아가더라도 대개 중국음식이나 일본, 베트남, 태국 같은 동남아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러나 유럽에서 체류하거나 여행을 하면서 겪는 음식선택의 어려움은 국내에서의 그것과는 강도가 확연히 다르다. 집에서 음식을 만들 때에도 동네 슈퍼마켓을 몇 번 돌다가 결국은 멀리 있는 중국 가게를 찾아간다. 흔히 동양마켓이라 불리는 중국 식료품점은 유럽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에 가서도 찾을 수 있다.

여기에서는 한국의 간장, 된장과 라면은 물론이고 여수에서 나오는 돌산 갓김치까지 판다. 물론 중국, 일본, 베트남, 태국의 음식에 필요한 자재들도 모두 있다. 여기에 오면 햄과 소시지와 같은 가공육과 치즈 같은 유제품으로 가득한 동네 슈퍼마켓에서 느끼는 거부감이 없어 편안하다. 어느 것을 집어가도 모두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인의 입맛이나 중국인의 입맛도 크게 보면 하나의 범위에 속한다는 뜻일 것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이러한 사실을 더욱 깊게 체험한다. 여행의 피로 때문에 몸이 힘들어 지면 제일 먼저 고향의 음식을 찾게 된다. 그래서 오랜 시간을 들여서라도 한식과 비슷한 맛을 찾아다닌다.

이럴 때는 중국식당은 물론이고 동남아 식당만 보아도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빗속에서 낮선 도시를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몸이 으슬으슬하여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었다. 구글 지도 속에 있는 중국식당을 찾아다니다 결국 찾지 못하고, 목에 잘 넘어가지 않는 빵과 소시지로 허기를 때우고 다시 거리로 나섰다. 몇 발 자욱 가지 않아 바로 건너편에 있는 베트남 쌀국수 집 간판을 발견하고는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쌀국수의 따뜻한 국물맛이 너무 간절했던 것이다.

그 때의 안타까움은 체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른다. 여행 중의 허기는 단순히 배고픔만이 아니다. 익숙한 입맛의 체험이 필요한 문화적 자극이다.

어릴 적 형성된 입맛은 세월이 흘러도 좀처럼 약화되거나 변하지 않는다. 주위의 한인 교포 중에 파독 간호사로 오신 분이 있다. 독일인과 가정을 이루고 서양음식을 먹으며 50년 넘게 살아온 지금도 고향음식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손두부를 혼자서 만들어 먹는다고 했다. 본인 외에 가족 아무도 먹지 않는 손두부를 만들어 남는 것을 주위의 한인교포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었다.

한번 먹어보니 한국의 손두부 맛 그대로였다. 같이 먹을 수 있는 이웃이 남아 있는 한 이 할머니는 손두부를 계속해서 만들어 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에게 손두부 맛은 단순한 음식 맛이 아니라 고향을 기억하는 상징 같은 것임에 틀림없으리라.

다행히 만하임에는 한국 식당이 하나 있다. 음악공부를 하러 왔다가 진로를 바꾼 젊은이가 경영하는 곳이다. 감기 기운이 있거나 숙취로 속이 쓰리면 국물로 속을 데우러 수시로 찾아가는 곳이기도 하다. 여기도 대부분의 고객은 중국 유학생들이다. 그들에게도 갈비탕이나 비빔밥은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인 듯했다. 주위에 중국식당이 여럿 있음에도 그들은 한식을 즐겨 먹고 있었다.

유사한 입맛을 가진다는 것은 자연환경이 유사하거나 역사적으로 공유하는 문화적 뿌리가 있다는 뜻일 것이다. 유럽은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음식의 종류나 재료나 비슷하다. 이것이 국가와 민족 간의 이질성을 뛰어넘어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강력한 바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이나 중국 일본도 비슷한 입맛을 가진 일종의 동아시아 문화공동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유럽이 역사적 아픔에도 불구하고 서로간의 동질적 요소를 키워가면서 공생을 모색하는 동안 우리는 아직도 이질성을 강조하면서 적대감을 키워가고 있는 점이 다르다.

오늘도 독일의 고속열차 이체에는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스위스 국경을 자기나라처럼 넘나들고 있다. 이미 그들은 하나의 문화적, 경제적 공동체였다. 우리에게는 요원한 일이다.

김상곤 전 울산시 감사관 독일 만하임대학 초빙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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