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는 통계 활용 과학적
AI 등 결합되면 정확도 향상
본질 흐리는 태도는 경계해야

▲ 이은규 울산발전연구원 전략기획실장

국가가 징병, 징세 등을 목적으로 통계를 작성한 지는 오래되었다. 오늘날 ‘센서스’라 불리는 인구 조사는 로마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수학과 과학의 발달에 따라 인간은 점차 자연현상을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과거 ‘우연’이라 여기던 일들도 확률과 통계학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는 믿음이 커져갔다. 학자들에게 ‘우연’이라는 현상은 단지 지식의 한계로 아직 설명하지 못한다는 말에 불과했다.

18세기 말, 산업혁명을 계기로 통계학은 새롭게 꽃을 피우게 된다. 산업혁명으로 사회가 급속하게 변화되고 대도시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회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정부나 전문가들은 사회문제를 파악하고 분석하는데 유용한 방법으로 통계조사에 주목하였다. 이후 여론조사, 인구통계, 고용통계 등 다양한 조사가 이루어졌고 정부는 물론 민간분야에서도 매우 의미 있는 자료로 활용되었다. 이 밖에도 통계학은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다른 학문영역을 발달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과학적이라 믿었던 통계조사는 가끔 당황스러운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여론조사는 정부 정책에 대한 평가, 정당이나 정치인 개인에 대한 평가 등에 많이 쓰인다. 또한 선거결과를 예측하는데도 중요한 도구이다. 그러나 여론조사가 ‘통계 이론을 활용한 과학적인 조사’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곤란하다.

조지 갤럽은 현대 여론조사의 창시자로 불린다. 그가 설립한 ‘갤럽’은 현재 세계 최대 여론조사기관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최근 미국 내 각종 정치관련 여론조사에서 갤럽의 아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오히려 ‘네이트 실버’라는 젊은이가 여론조사의 선두주자로 떠올랐다고 한다. 전직 야구통계 전문가인 그는 의회선거와 대통령선거 결과를 족집게처럼 예측해서 유명해졌다. 특히 2012년 대선에서 오바마의 낙선을 예측한 갤럽과 달리 네이트 실버는 오바마의 당선을 거의 정확하게 예측했다.

그런데 네이트 실버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해서 무슨 특별한 여론조사를 했던 것은 아니다. 단지 다른 여론조사기관들이 내놓은 결과를 적절하게 조합해서 나름의 예측을 내놓았을 뿐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여론조사기관들과 마찬가지로 네이트 실버 역시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은 예측하지 못했다.

한편 설문조사보다 간단하고 쉬워 보이지만 조사결과의 차이가 극명한 사례도 있다. 바로 집회 참가자 수를 집계하는 것이다. 최근 주말마다 광화문 광장을 사이에 두고 ‘진보’와 ‘보수’ 진영 간의 집회가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집회참가 인원수를 두고 경찰과 양쪽 진영은 물론 언론들 간에도 논란이 적지 않다. 간단해 보이지만 집회참가 인원 통계는 실제로 집계가 쉽지 않은 통계이다. 일반적으로 ‘페르미 측정법’이라는 방식으로 전체 장소를 밀도에 따라 구분하여 계산한다. 대략적인 추정치를 구하는 것으로 높은 정확도를 기대할 수 없는 방법이다. 참여인원에 대해 주최 측과 경찰 측의 차이를 크게 하는 원인은 ‘시점’과 ‘공간’이다. 경찰들은 질서유지를 위해 투입될 인력을 산출하기 위해 특정 시점의 최대 인원을 기준으로 계산한다. 주최 측에서는 행사시간 내 전체 인원을 대상으로 한다. 행진이 이루어질 경우 시간과 장소에 따라 인원 변동이 더욱 커지게 된다.

최근 대통령, 정당과 정치인 그리고 정책 등에 대한 여론조사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문제는 조사기관에 따라 결과가 들쭉날쭉해서 도무지 뭐가 맞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여론조작설이 나오기도 하고 결과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서 논쟁거리가 되기도 한다.

앞으로 통계학, 빅데이터와 인공지능기술 간의 결합이 더 심화되면 여론조사의 정확도도 크게 향상될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가 확실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오히려 여론조사 결과를 맹신하거나 본질을 호도하려는 태도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흔히 민심은 흐르는 큰 강물과 같다고 한다. 여론조사는 흐르는 강물을 한순간에 떠서 잠시 살펴보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이은규 울산발전연구원 전략기획실장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