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대옥 무거중 교사

실시간 검색어에 ‘가갸날’이 1위에 오른 것을 보고 ‘한글날’을 실감한 10월9일 아침. 태극기 게양을 위해 집 이곳저곳을 수색하다 결국 찾지 못했다. 그리고 아파트 베란다로 고개를 내밀어 다른 집들을 살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태극기를 게양한 집이 없어 슬그머니 태극기 찾기를 멈췄다. 마음 한편이 불편한 가운데 오늘의 뉴스를 보려고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그런데 핸드폰이 ‘작년 오늘’ 내가 한 일이 무엇인지, 원하지 않는 친절을 베풀며 알려주는 게 아닌가.

2018년 10월9일 오후. 나는 가족들과 중구청에서 주관하는 한글날 기념 퍼레이드에 참석했었다.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그 해에는 한글날 기념행사로 국어 수업시간을 이용해 ‘훈민정음 윷놀이’도 진행했다. 한글에 관한 지식을 맞추며 윷놀이를 진행하는 보드게임이었는데, 학생들 반응이 좋아 열심히 만든 보람이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시험이 가까워 아무런 기념도 하지 못하고 10월9일을 맞고 말았다.

보통 학교에서 한글날 기념행사를 한다고 하면,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 알리는 글이나 우리말을 아름답게 쓰자는 주장을 담은 ‘글짓기’를 하게 된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10월이면 써 내야 하는 ‘한글사랑’에 대해 피로감을 표현하며 마지못해 글짓기를 한다. 자신의 삶을 담은 글쓰기도 쉽지 않은데, 마음이 동하지 않는 주제로 ‘글짓기’를 해야 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몇 해 전 부터 정확한 행사 명칭까지 정해져 내려오니, 다른 활동은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꼭 ‘글짓기’ 활동을 하게 되었다. 한글사랑을 표현 할 다른 방법은 없을까? 한글날을 보낼 방법을 아이들에게 묻고, 아이들과 함께 답을 찾을 수는 없을까?

2019년 한글날. 방탄소년단(아이돌 그룹)의 영문판 팬 북(각종 기록, 신상 사항 등의 내용을 사진과 함께 담은 책)에는 한글로 멤버 이름 쓰는 법, 한글로 팬레터 쓰는 법 등이 담겼다고 한다. 또 그 그룹의 팬클럽(아미)은 방탄소년단의 노랫말을 한글로 써보는 이벤트를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에서 진행하여, 전 세계 팬들과 함께 한글날을 기념했다. 이것이 방탄소년단과 그 팬들이 ‘한글사랑’을 즐기는 방식이다.

‘시험이 다가온다는 핑계를 대지 말걸….’하는 후회와 함께, ‘늦었지만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2019년 10월10일. 나는 ‘훈민정음 한복’을 입고 출근했다. ‘한글은 아름다운 글자다’라고 가르치지만, 그 예시는 늘 인터넷 상에만 있었다. 그래서 치마폭에 ‘훈민정음 어제서문’과 ‘용비어천가’를 은박으로 수놓은 한복을 입었다. 가족들의 “정말 그렇게 입고 갈 거야?”를 들으며, 불안을 안고 출근했다. 하지만 “그거 다 한글이에요?”부터, “선생님 예뻐요! 한복이요.”를 거쳐, “우리 학교도 ‘한글로 꾸미는 날’ 같은 거해요!” 까지 아이들의 즐거운 반응과 다양한 생각들을 들으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러니 가볍고 즐겁게 한글을 사랑해도 좋지 않을까? 아이들은 한글날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즐기는 교사를 보며, ‘나라면….’ 하고 생각했으리라. 그러니 다음 한글사랑 주간엔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어야겠다. ‘얘들아, 한글날 뭐하고 놀까? 우리도 한글사랑을 즐겨보자!’ 강대옥 무거중 교사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