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범상 울산대 명예교수·실용음악도

해방이후 37년간 당연시되던
야간통행금지를 해제할 때도
대중교통 내 금연 시행 때도
일본대중문화를 개방할 때도
부작용을 먼저 생각한 일부의
우려가 많았으나 결과는 성공

광장에 나선 국민들로 인해
대한민국의 미래정체성에 대한
우려가 들끓고 있는 현 상황도
괜한 걱정으로 지나가길 기대

예전엔, 야간통행금지(夜間通行禁止)제도가 있었다. 밤 12시가 되면 사이렌이 울리고, 그 이후엔 사람들이 집밖을 다닐 수 없었다. 그러니 매일 밤 11시쯤 되면 술집들이 몰려있는 도심번화가는 택시 잡느라 도로가 난장판이 되었고, 요금을 두 배, 세 배 준다고 손짓발짓해도 택시잡기에 실패하면 어쩔 수 없이 그 동네 여관이나 여인숙에 묵어야 했다. 동네어귀에선 야경꾼들의 딱딱이 소리가 귀가(歸家)를 재촉하고, 조용해진 동네골목길엔 어느새 나타난 ‘메밀묵 찹쌀떡’ 장수의 구성진 목소리만이 밤을 지켰다. 1945년 해방과 함께 생겼던 이 제도는 37년만인 1982년 어느 날, 그러니까 서울 아시안게임 열리기 2년 전, 해제되기에 이르렀다. 전두환 정권시절이었다. 찬반논란이 거셌다. 찬성자들의 논리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통행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이었고, 반대자들은 이 제도가 없어지면 도둑, 강도사건 등이 급증하여 사회가 불안해 질 것이라는 논리였다. 우여곡절 끝에 통금해제가 결정되었고, 시행 후에 보니 각종 범죄가 오히려 대폭 줄어들었다. 괜한 걱정이었다.

예전엔, 대중교통수단의 대표 격인 버스와 택시 안에서 자유롭게 담배를 피웠다. 여성은 대놓고 담배피우지 못하던 시절이었으므로, 당연히 흡연자는 모두 남자였다. 운전기사도 승객도 담배를 피워대니 버스 안엔 늘 담배연기가 자욱했다. 그러던 것이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규제를 시작했다. 노태우 정권시절이었다. 당시 나는 버스 내 금연제도는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고 단언했었다. 흡연의 자유가 밀폐된 공간이라는 이유로 억압당하는 것을 우리나라 남자들은 결코 수용하지 않을 것이란 이유에서였다. 간접흡연이란 단어자체도 없었을 뿐 아니라, 담배를 비뚤어지게 꼬나 물고 폼 나게 연기를 뿜어내는 것은 멋진 남자의 상징이라는 인식정도는 버스 안을 연기로 가득 채워 발생하는 건강에 대한 우려정도를 훨씬 능가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튼 이 정책은 실행에 옮겨지자마자 따사로운 햇빛에 눈 녹듯 순식간에 받아들여진 것이다. 놀라웠다. 우리 국민에 대해 경외심이 솟았다. 나의 두 번째 괜한 걱정이었다.

예전엔 택시나 버스의 운전기사는 물론이고, 승객이 안전벨트를 착용하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충돌 시 터지게 되어있는 인명사고 방지용 에어백도, 차량용 안전유리도 없었다. 그러던 것이 1990년경부터 안전벨트 미착용 시 교통법위반으로 벌금을 부과하는 제도가 생겼을 때, 나는 이 제도가 결코 지켜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안전벨트를 매면 왠지 혼자만 살겠다(?)고 하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이거나, 특히 운전자가 남자일 경우 벨트를 매면 쪼잔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싫기 때문에 분명히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운전기사는 물론, 승객도, 어린 아기들을 위한 아기용 시트도 매우 빠르게 정착되는 것을 보고, 괜한 걱정임을 깨달았다. 선진 대한민국 국민이 자랑스러웠다.

예전엔 거리에서 일본어 간판은 물론 일본 노래, 일본 영화, 일본 만화를 듣고 볼 수 없었다. 일본대중문화의 우리나라 유입이 강력 규제되었고, 이는 질 낮은 문화콘텐츠가 몰려들어오면 우리의 찬란한 전통문화가 순식간에 오염될 것이란 이유에서였다. 정부뿐 아니라 시민사회도 개방을 용납하지 않았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는 대중문화가 국가의 장벽을 넘어 글로벌화 되는 추세에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유독 일본에 대해서만 문을 걸어잠그고 있었던 것이다. 국민의 마음속에 내재되어있는 반일감정을 정부의 입장에서 앞장서서 허물기도 어려웠던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1970~80년대만 해도 일본에 가보면 동경 한복판에 한글 간판들이 버젓이 걸려 있는 것은 물론, 주말 저녁 골든타임에 조용필이 TV에 나와 한국어로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르던 시기였다. 나는 ‘일본 대중문화가 들어옴으로써 오염될 수준의 우리 문화라면 그런 허약한 문화는 지킬 가치도 없다. 우리나라 문화는 결코 오염되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주위에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요즘 ‘일본상품 불매운동에 반대다’라고 외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 와중에 김대중 정부는 1998년 대중문화개방을 단행했다. 우려했던 상황은 오히려 일본에서 일어났다. 예로써 노래만 하더라도 한명숙, 이성애, 조용필, 김연자에 머물던 일본 내 한국의 대중음악은 보아, 비, 동방신기, 2NE1을 거쳐 방탄소년단에 이르기까지 K-POP이 일본전국을 섭렵한 것이다. TV연속극을 통해 인기를 얻은 배용준이 일본에 입국하면 나리타(成田)공항이 터져나간다. 너무도 괜한 걱정이었다.

지금 많은 국민이 대한민국의 미래정체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자유로운 경쟁과 창의력을 바탕으로 성장을 도모하되 정부의 세금과 복지제도 등을 통해 계층 간 격차의 해소를 지향하는 시장자본주의가 쇠퇴하고,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정부의 강력한 시장개입, 국유화와 강제분배 등을 지향하는 사회주의로 바뀌는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사실이라면 개인의 자유는 심각하게 구속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우려와 관련이슈로 의견이 서로 다른 국민들이 광장에 직접 나서고 있으며, 폭력상황으로 이어지지나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 이 역시 괜한 걱정이길 기대해 본다. 윤범상 울산대 명예교수·실용음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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