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과하고 무분별한 건강검진
건강에 대한 자신감 저하에 한몫
검진 프로그램 재정비 필요할듯

▲ 김도하 내과의원장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이 때쯤이면 수험생과 그 가족의 마음이 엄청 바빠진다. 요즘은 또 건강검진을 하는 의료기관들이 제일 바쁜 시기이기도 하다. 미루어 놓았던 숙제처럼 연말까지 해야만 하는 건강검진 시즌이 돌아온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건강검진을 많이 하고 활성화된 나라는 전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아마 일본 말고는 없을 것 같다. 필자도 업무 중의 많은 부분이 건강검진이다 보니 검진 후에 “다 건강하시네요, 2년 후에 또 하시면 됩니다”라는 설명을 하루에도 여러 번 하고 있다.

지난 7월에 보건복지부에서 ‘OECD 통계로 보는 한국의 보건의료’를 발표했다. 매년 발표하는 이 지표는 OECD 보건통계의 주요 지표를 사용해 우리나라와 각국의 수준 및 현황을 분석한 것이다. 필자가 제일 주목한 통계는 ‘주관적 건강인지율’이란 지표인데 15세 이상 인구 중에서 ‘본인이 건강하다고 생각’하는지를 설문 조사한 것이다. 결과는 놀랍게도 한국(29.5%)이 가장 적었으며, 일본(35.5%)이 그 다음으로 적었다. 반면 뉴질랜드(88.2%)를 비롯하여 호주, 미국, 캐나다 등 오세아니아와 북미지역 국가에서는 조사대상 10명 중 약 9명이 ‘본인은 건강하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국민의 기대수명은 82.7년으로 OECD 국가 중 상위권에 속하며, 주요 질환의 사망률은 대체적으로 OECD 평균보다 낮다. 그러니까 객관적인 통계 지표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오래 살고 건강하다고 할 수 있는데도 ‘본인이 건강하다는 생각’은 형편없이 낮은 것이다. 이런 수치는 조사를 시작한 2008년 이후 점차 낮아지는 추세다. 국민소득은 올라가고 검진을 더 많이 받는데도 정작 자신은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일생에서 가장 건강할 나이인 20~30대 젊은이들조차 건강에 자신감이 떨어져 있고, 병원을 찾는 이들도 많아 안타까울 때가 많다.

이런 통계가 나오는 것은 건강 자체보다는 사회문화적 요소에 기인하는 것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건강에 대한 주관적 평가에는 사회문화적 요인이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한 예로 일본 같이 노인 인구 비율이 높은 나라에선 건강인지율이 낮게 나올 가능성이 크다. 또한 한국은 노동 강도가 높은 대표적인 나라여서, 피곤하거나 육체적·정신적 건강이 좋지 않을 때 충분한 휴식을 하면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여유와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지 않은 점도 있는 듯하다.

이밖에도 건강도 비교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자신은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타인과 비교하면서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 속성 가운데 하나지만 심한 굴곡의 근현대사를 겪어온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런 성향이 조금 강한 것 같다. OECD기준 중산층으로 분류하는 것과 한국인의 체감중산층으로 느끼는 경우가 훨씬 낮게 나오는 괴리 현상을 봐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조심스런 입장이지만 요즘 시행되고 있는 무분별한 건강검진이 건강에 대한 주관적 자신감을 더 떨어뜨릴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정부에서 시행하는 국민건강공단검진의 경우 최근 범위가 확대되어 만 20세부터 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결핵환자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의료인으로서 필자는 제일 건강할 나이인 20대에 1년이나 2년 주기로 혈액검사를 하고 흉부사진을 찍는 것은 좀 과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또한 올해 도입돼 정부가 세계 최초라고 내세우는 전국민 대상 폐암 검진의 경우도, 과잉진단예방연구회와 같은 의사단체에서도 반대하는 등 완전한 동의가 이루어지기 전에 성급하게 실시됐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더욱 걱정스러운 부분은 정부의 정책과 관계없이 시행되고 있는 직장 단위의 건강검진 프로그램이다. 어떤 직장은 40세 이전에도 위·대장내시경 등을 1~2년 간격으로 하도록 하고 있는데, 특이한 유전적 경향이 있지 않고 증상도 없는 건강한 젊은이가 이런 검사를 이렇게 자주 해야 하는 의학적 근거는 많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높아지는데 건강 자신감은 계속 낮아지고 있다. 관계 당국은 이런 상황을 문제점으로 인식하고 이에 맞는 검진 프로그램과 정책을 개발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건강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 하는 국민이 행복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김도하 내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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