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논설위원

‘오-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 붉은 감닙 날러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

‘오매, 단풍 들것네’ 중에서(김영랑)

김영랑은 14살에 결혼을 했다가 1년 만에 상처를 했다. 그런 그였기에 어린 누이에 대한 감정이 남달랐다. 어느날 어린 누이가 장독대(장광)에 무언가를 가지러 나갔다가 무심코 떨어지는 붉은 감잎을 보았다. “오매 단풍 들것네…”

오늘 아침 보니 신불산, 간월산의 단풍이 반쯤 내려왔다. 이번 주말쯤이면 울산도 온통 붉은 색으로 덧칠해져 있을 것이다. 단풍은 하루평균 20~25㎞정도 남하한다. 봄꽃의 북상 속도인 하루 평균 22㎞와 거의 비슷하다. 그렇게 보면 단풍의 남하 속도나 봄꽃의 북상 속도나, 인간의 걸음걸이 속도나 비슷비슷하다. 그게 자연이고 인생인 것 같다.

우리나라에는 단풍나무과 식물이 다섯 종이 있다. 작은 잎이 11개인 것은 섬단풍, 9개는 당단풍, 7개는 단풍, 5개는 고로쇠, 3개는 신나무다. 이 중에서 당단풍이 가장 붉은 색을 띤다.

 

흰구름 푸른 내는 골골이 잠겼는듸/ 추상(秋霜)에 물든 단풍 봄꽃도곤 더 좋아라/ 천공(天公)이 나를 위하야 뫼빛을 꾸며 내도다… ‘흰구름 푸른 내는’(김천택)

이 시조의 백미는 ‘천공(天公)이 나를 위하야 뫼빛을 꾸며 내도다(하늘이 나를 위해 산의 빛을 꾸며주었구나)’라는 구절이다. 먼산의 만산홍엽, 천자만홍도 좋지만 구름 한점 없는 푸른 창공이 없으면 모든 것이 헛일이다. 김천택이 하늘에 ‘공(公)’를 붙인 연유를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 깊은 사유의 절묘함을 느낄 수 있다.

단풍이 활활 타오르고 나면 머지 않아 발 밑에는 낙엽들이 무성할 것이다. 낙엽은 원래 뿌리에서 생겨난 것이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불서(佛書) <전등록>에 ‘낙엽귀근‘(落葉歸根)’이라는 용어가 나온다. 열반에 들 때 ‘떨어지는 잎사귀는 근본으로 돌아가고 돌아올 때를 기약할 수 없다’고 말한 데서 유래된 말이다. 노자의 <도덕경> ‘귀근(歸根)’편에도 비슷한 말이 나온다. ‘만물이 성장하고 변해갈 때 나는 그들의 돌아감을 본다. 만물은 무성해졌다가 다시 그 뿌리로 되돌아간다(萬物竝作 吾以觀復 夫物芸芸 各復歸其根)’

이번 주말부터 울산 일대는 그야말로 ‘추상(秋霜)에 물든 단풍, 봄꽃도곤 더 좋은’ 계절이 온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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