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천 전 국립합창단 예술감독, 합창지휘박사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제/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 기럭 기러기/북에서 오고/ 귀뚤 귀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시의 내용을 보니 뜸부기(천연기념물 제446호)가 살만하게 벼가 자라난 여름철에 서울로 간 오빠가 귀뚜라미가 울고 나뭇잎이 떨어지는 요즈음 계절인 가을이 되도록 오지 않자 여동생이 오빠를 기다리고 있다. 시인 최순애가 12세 때 지은 시다. 딸 다섯에 외아들인 최순애의 오빠는 동경으로 유학을 갔다가 관동 대지진 후에 조선인 학살을 피해 귀국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그녀의 오빠는 일본 순사들로부터 감시를 당해야 했다. 고향인 수원에서 소년운동을 하던 그녀의 오빠는 서울에 가서 소파 방정환 선생 밑에 들어가 소년운동과 독립운동을 했고, 한 달에 한번 정도 고향집에 오곤 했다. 집에 올때 마다 동생 선물을 사다주던 오빠는 그러나 가을이 되도록 소식도 없이 오지 않았다. 최순애는 날마다 서울쪽을 바라보며 울다가 집에 들어오곤 했다. 그때 쓴 ‘오빠생각’이 1925년 방정환이 만들던 <어린이>라는 잡지에 입선했다. 다음해 14세 소년 이원수가 이 잡지에 <고향의 봄>으로 입선한다. 이원수의 시를 보고 최순애는 편지를 썼고 수원소녀 최순애와 마산소년 이원수는 그 당시 최고의 소통방법인 펜팔을 시작했다. 얼굴도 본적 없는 두 사람은 마침내 편지로 결혼까지 약속했다. 펜팔을 시작한지 7년 후 19세 최순애와 20세 이원수는 수원역에서 만나 부모님께 인사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원수가 나타나지 않았다. 최순애의 부모는 당장 다른 사람과 결혼을 종용했으나 최선애는 이원수를 기다리며 애를 태우고 있었다. 이원수는 불순한 글을 썼다는 죄로 일본 순사에 붙잡혀 옥살이를 하고 풀려나서 1년 후에야 최순애를 찾아왔다. 그 후 그들은 결혼했고 3남3녀를 두고 행복하게 살았다. 가곡 ‘오빠생각’은 이 시에 작곡가 박태준이 곡을 붙여 세대를 이어가며 불리는 애창곡이 됐다. 구천 전 국립합창단 예술감독, 합창지휘박사

#추천음악 : 오빠 생각 (최순애 작사, 박태준 작곡)/ 선명회 어린이합창단 & 이선희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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