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미컬운반선서 폭발·화재사고 발생
공용부두 유류·액체화학물 위험 체감
사고 재발방지 위한 강력한 대책 필요

▲ 신형욱 사회부장

지난 9월28일 울산시민들은 여태까지 겪어보지 않았던 아찔한 상황을 경험했다. 외신이나 영상 등을 통해서 보았던 버섯모양의 거대한 불덩이가 200m 가량 솟구치는 모습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당시 사고현장 주변에 있거나 인근을 지나던 시민들은 말 그대로 혼비백산, 살아야 겠다는 일념으로 도망치기 바빴다. 14종 2만7117t의 유해화학물질을 실은 선박이 선박간 환적작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폭발·화재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최소 2~3일은 소요될 것이란 화재 진압이 18시간30분 만에 완료되면서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사고 선박 주변에 또다른 위험물질이나 시설이 없어서 연쇄폭발 등 상상조차 하기 싫은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번 사고로 인한 피해 규모는 역대급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울산이 화약고를 이고 산다는 현실을 다시 한번 절감케 한 사고였다. 조성된 지 50년이 넘은 울산미포국가산단 등 지역 산단에는 100여개의 공장에 폭발성이 강한 유류와 화학물질에 가스 2억여t이 저장된 1700여개의 탱크가 몰려있다. 더욱이 이런 시설들 대부분이 시가지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자칫 대형재난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상존하고 있다. 거기에 국내 최고의 액체물동량 처리항만인 울산항에 유조선과 케미컬운반선은 물론 컨테이너선, 자동차운반선에 어선까지 수시로 드나드는 환경이다. 이번 염포부두에서 발생한 류의 폭발·화재사고가 언제든지 재연될 수 있는 복잡한 구조다.

하지만 이번 사고에서 보듯 사전에 사고를 막기 위한 장치가 있는지, 있다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해상환적 문제가 대표적이다. 항만 관계자들은 액체화물 환적의 사고 위험성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그럼에도 사고가 발생한 곳은 액체화물 환적 전용부두가 아닌 일반부두인 염포부두에서 진행됐다. 염포부두 위론 울산대교가 있고 주변에 하역회사 등이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안전불감증이란 말이 나온다. 본보 지적 이후 항만당국이 염포부두 등에서의 액체화물 환적을 전면 중단키로 했지만 뒷북처방이란 지적이다.

정확한 사고원인과 그에 따른 대책마련은 합동감식 결과가 나와야 겠지만 안전관리대책에 대한 근본적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울산의 대형 정유사의 경우 단일화물을 자부두에서 취급함에도 자체안전을 위해 선주하역감독관이 승선해 하역작업 일체를 감독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고 선박처럼 소량다품종을 동시 취급하는 케미컬운반선은 화물자체의 위험도가 높고 공용부두 사용이 많음에도 선주 하역감독관이 배치돼 있지 않다는게 항만 관계자의 설명이다. 제대로 된 안전관리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실제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일본의 경우 법제화와 협회 관리 등 법적·제도적 장치를 갖고서도 케미컬운반선에 대한 하역작업은 극도로 제한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항만 수익 창출을 위해 액체화물 전용부두가 아닌데도 위험 액체환적화물까지 관행적으로 취급해온 울산항의 현실과는 엄청난 차이다. 수익 창출을 포기하지 못한다면 안전장치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 현재의 울산항 시스템으로서는 이번 사고류의 사고가 언제든지 재발 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사후 대책보다 사고자체를 막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 더욱이 울산은 동북아 오일·가스 허브를 표방하고 있다. 오일·가스 허브 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더라도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시장으로부터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울산시는 지속적으로 정부를 상대로 안전에 대한 관심과 제도적 정비, 지원을 강력 요구해야 한다. 아울러 위험액체화물과 선박, 항만업무 등을 꿰어차고 나갈 수 있는 인력풀 조성에도 노력해야 한다. 이번 사고가 시민에게 준 충격파 못지 않게 다시는 이같은 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결박을 단단히 고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신형욱 사회부장 shin@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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