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미란 울산대 법학과 조교수

우리 형법에서는 수사기관이 해당 사건의 공판이 청구되기 전에 그와 관련된 피의사실을 외부로 알리는 경우에는 처벌하겠다는 조항을 두고 있다. 즉, ‘피의사실공표죄’라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동죄는 형법 제정 시에 마련되었으나, 그 이후 지금까지 동죄로 형사처벌이 이루어진 경우가 없어, 사문화된 조항이라 불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죄는 때때로 세간의 뜨거운 관심을 받기도 하고, 논쟁의 중심이 되기도 한다. 그 중 가장 의견이 분분한 것은 동죄는 피의자의 명예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고, 이로 인해 피의사실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는 침해받는다는 것이다.

살펴보면, 실제로 형법 제정 당시의 입법취지 설명을 보면 동죄는 피의자의 신용 및 명예 등 피의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 마련된 규정이 맞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동죄는 공무원의 직무유기나 뇌물 등과 함께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죄에 속하는 규정이다. 즉, 수사기관이 아직 공판이 청구되지도 않은 사건을 외부에 알리거나 해당사건이 언론 등을 통해 보도된다면, 그에 따라 피의자가 적극적으로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할 우려가 있고, 여론에 의해 공정수사나 재판이 어려워질 것을 생각하여 국가의 범죄수사권이라는 국가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고, 이러한 조항의 유지를 통해 피의자의 인권이 함께 보호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동죄와 국민의 알권리는 양날의 검이다. 어느 한쪽만을 강조하게 되면 우리 사회에서 발생한 중요 범죄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가 침해될 수도 있고, 수사나 재판에 관한 국가기능이나 피의자의 인권이 침해될 수도 있다. 다만, 이를 염두에 두고, 우리 형법은 해결책을 내어놓고 있는데, 바로 ‘공판 청구 전’이 그것이다. 오로지 국가기능을 보호하기 위하여, 국민의 알권리가 침해되건 말건 관계없이 재판이 끝날 때까지 피의사실을 비밀로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원활하고 공정한 수사를 위해 수사과정에서 알게 된 피의사실의 공표는 해당사건의 공판이 청구된 이후로 하고, 공소의 제기와 함께 온 국민 앞에 정확하게 정리된 사실을 드러내고, 이를 바탕으로 공개적이고 공정하게 재판을 진행하겠다는 취지다.

생각건대, 이러한 형법의 태도는 합당하다. 즉, 수사과정에서 수집되는 증거에는 불명확한 것도 있고, 잘못된 정보도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자료 중에서 공판 준비를 위해 검토에 검토를 거치면서 불순물이 제거된 증거와 그를 바탕으로 한 피의사실이야말로 우리 국민에게 알려져야 할 피의사실인 것이고, 보다 전 단계에서의 알권리 충족을 위해 ‘제대로’ 된 알권리를 침해받게 된다면 그건 이상하지 않은가. 즉, 공판 청구 전에 특정 사건의 피의사실을 알게 되면 이른바 국민의 알권리는 충족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국민의 ‘제대로’ 알권리는 침해될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피의사실 공표는 주로 정치적 사건을 예로 들어 생각하기 쉬운데, 대신 살인죄나 강간죄 등과 같이 이른바 언론보도 등을 통해 피해자에게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사건도 예로 들어 생각해 봐 주시길 바란다. 과연 그러한 사건에서 피해자는 피의사실의 공표를 원할 것인지, 그리고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피해자의 권한 침해나 2차 피해의 발생은 용인되어도 좋은지 말이다. 배미란 울산대 법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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