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가도 - 이순귀作 : 책가도는 선비의 서가를 장식했던 그림이다. 책이나 문방사우가 귀하던 시절에 그것을 소장하고 싶은 선비들의 소망이 담겼다. 책을 읽고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 장원급제를 향한 열망을 갖게 하는 교훈적 의미와 의도도 들어 있다.

훌륭한 장인정신 속에서 벼루 탄생
글을 쓰는 마음도 벼루장인과 같아
세월이 흐르면서 연필·펜·전자펜 등
사용하는 필기구도 변화하고 있지만
깊은 묵향서 나오는 필력 못따라가

얼마 전 집을 옮겼다.

이사를 할 때마다 나는 묵은 짐을 과감하게 내다버린다. 그런데도 절대 버리지 않는 물품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가장 소중하게 보관해 온 것이 벼루와 고서다. 별로 쓸 일은 없으나 여태까지 소중하게 간직해 왔다. 그건 할아버지 아버지가 사용했던 유일한 유품이라서 그렇다. 비록 새까만 세월의 때가 묻었지만, 그분들은 이 벼루에 먹을 갈아 제문과 지방을 써서 기제사를 모셨다. 동네의 대소사에도 한몫했을 터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가슴 한쪽이 늘 짠해 온다.

어릴 때 내가 살던 시골집 사랑방에는 오래 묵은 옛것들이 잠자고 있었다. 누구도 그것들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큰 오빠마저 세상을 떠나고 나자 아무도 그것들을 챙겨주지 못했다. 그걸 깨닫고 나는 벼루부터 가슴에 안았다. 화려한 조각문양이나 고가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福·壽·卍·囍자 같은 문자 하나 없는, 먹을 가는 용도로만 써 온 듯 소박한 민무늬에 검정 빛 알몸의 벼루였다.

책장에 오롯이 앉아 있는 벼루를 보자 나는 서정주의 <질마재 신화> 첫머리에 나오는 ‘신부’라는 시가 떠올랐다. 사, 오십 년 동안 첫날밤 그대로 신랑을 기다리며 다소곳이 앉아 있다가 초록재와 다홍재로 폭삭 내려앉았다는 그 신부가 생각났다. 가끔 어른들의 혼이 배여 있는 그것을 꺼내 어루만지고 닦아준다. 오늘도 나는 먹을 가는 마음으로 벼루를 쳐다본다. 못 하나 박지 않은 투박한 나무상자에 정갈히 앉아 있는 그한테서 진정한 선비의 모습이 보인다. “군자는 의를 기본 바탕으로 삼고, 그것을 예로 행하고 겸손으로 표현하고 믿음으로 완성하라”라는 공자의 말씀이 얼핏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리나라 최초의 벼루박물관인 ‘경주취연벼루 박물관’을 찾아간 적이 있다. 지난 50년 동안 1500여 점의 벼루을 수집해 두었다.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벼루를 전시해 놓았다. 그곳 관장님의 설명을 듣고 무척 놀랐다. 벼루의 재료도 참으로 다양했다. 돌 뿐만 아니라, 흙, 오석, 자석, 옥, 수정, 나무, 쇠, 도자기, 기와 등 온갖 재질은 다 사용한 지혜가 놀라웠다. 문양은 또 어떠한가? 거북, 학, 소나무, 불로초, 대나무, 용, 석류, 개구리, 박쥐 등 다양한 표현에 뛰어난 미적 감각에 또 한 번 감탄했다. 순간 벼루와 문방사우, 민화를 함께 전시해 놓은 1,2층 박물관이 시공을 초월한 선비정신으로 가득 차 보였다.

벼루는 삼국시대부터 원형벼루가 만들어졌다고 하니 문자와 함께 오랜 역사를 가졌다. 여러 고분에서 부장품으로 발굴되기도 한다. 아마 그 아득한 옛날, 요즘 우리가 늘 갖고 다니는 휴대폰이나 필기도구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실제 옛 선비들은 작은 벼루와 붓을 몸의 일부처럼 차고 다녔다. 연암 박지원은 청나라의 문물을 보면서 먹을 갈고 세필을 들어 끊임없이 메모를 했다. 그것이 모여 <열하일기>가 되었다.

한집안의 애장품에 대물림한 붓과 벼루가 선비문화의 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벼루는 먹을 갈아 붓으로 글씨를 쓰기 위한 도구라는 사전적 뜻이 있다. 먹을 간다는 뜻에서 연자를 동의자로 쓴다고 하니 모든 연구(硏究)가 벼루에 먹을 가는 마음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오죽헌의 어제각에는 율곡 이이가 <격몽요결>을 지을 때 쓴 벼루가 남아 있다. 정조 임금은 율곡이 사용하던 벼루를 보고 서문을 친필로 써서 보냈다고 한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나는 평생 열 개의 벼루를 밑창 냈고, 천 자루의 붓을 몽당붓으로 만들었다.”는 편지 속 한 구절과 “가슴속에 만 권의 책이 들어 있어야 그것이 흘러넘쳐서 그림과 글씨가 된다.”라는 말에서 그의 노력이 얼마나 치열했나를 알 수 있다. 이 모든 사유(事由)가 벼루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20대 때, 육칠십 어른들은 모두 고리타분하고 무식하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이런 내 생각이 바뀌는 사건이 일어났다. 오래된 사랑채 지붕에 기와를 입힌다고 뒷간 궤짝 2개를 끄집어냈다. 거기서 엄청난 고서가 쏟아져 나왔다. 어머니는 알아듣지도 못할 소리로 그 책들을 원망하며 아궁이에 불을 싸질렀다. 내가 기겁을 하며 겨우 고서 한 박스를 건져냈다. 그 많은 책을 읽고 공부했던 옛 어른들이 생각나서다. 나는 그날 이후 어릴 적에 내가 보았던 그 벼루에 더 관심을 쏟았다. 어른들 말에 더 이상 토를 달지도 않았다. 겸손한 마음으로 공부하고 정진하고자 애써왔다.

명품 벼루란 좋은 재료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 터이다. 훌륭한 장인 정신이 깃들어야 비로소 품격 있는 벼루 하나가 탄생한다. 글을 쓰는 마음가짐도 벼루를 만드는 장인의 정신과 같은 것은 아닐까. 나는 여러 가지 필기도구를 쓴다. 연필과 펜으로 종이에 쓰고 PC 자판을 치기도 하지만 요즘은 스마트폰에 문자를 찍고 전자펜으로 또박또박 쓸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집 책장에 앉아 있는 벼루를 생각한다. 내 마음 깊숙이 들어와 있는 그 벼루에 생각의 먹을 갈면서 정성을 다해 써나간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묵향이 피어오르듯 술술 글이 풀려나간다.

▲ 이영필씨

■이영필씨는
·1994년 현대시조, 1995년 시조문학
·1995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조집 <목재소 부근> <장생포 그곳에 가면> <금빛 멜로디> 등
·제24회 성파시조문학상, 제7회 울산시조문학상 수상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울산지회장

 

 

 

▲ 이순귀씨

■이순귀씨는
·개인전 4회
·회원전 국내·외 50여회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소장(당초문 황·청보)
·전승공예대전 3회 수상
·울산민화사랑회 지도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