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면 문화의 흐름 엿볼 수 있어
직업 40% 미래엔 기계로 대체 전망
불안정한 고용문제 정책으로 대비를

▲ 김광수 서강대 로스쿨 교수

‘82년 생 김지영’은 동명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여자로 태어나 하고 싶은 일은 못하고 마음 고생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30년 전 같으면 으레 그러려니 했겠지만 지금 상황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차별의 이야기가 됐다. 이 영화를 둘러싸고 영화평점 매기기에서 남녀 간에 극과극의 점수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남녀평등 정착을 둘러싼 논의는 현재진행형이 아닌가 싶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최신 작품이 개봉되어 ‘김지영’과 박스오피스(매출액) 수위를 다투고 있다.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인공지능 로봇이 인류를 위협하는 시대로부터 파멸을 미리 막기 위하여 과거인 지금으로 파견되어 인간과 싸우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근육질의 사내와 첨단 생체기술을 적용하여 총을 맞아도 죽지 않고 어마어마한 힘을 자랑하는 기계가 쉼 없이 전투장면을 전개한다.

사회 속에서 억압을 받는 여성과 미래의 로봇이 벌이는 전투를 담은 이들 영화 두 편은 서로 극과 극의 다른 내용을 담고 있어서 별로 어울리지 않는 듯이 보인다. 그런데 이 두 영화는 서로 닮은 부분이 있다. 터미네이터6에서 미래의 인류가 보호하려고 하는 사람은 여성인데 보호하여야 하는 이유는 그가 낳은 아이가 미래의 운명을 쥐고 있다는 설정이 아니고 바로 그 자신이 기계에 맞서서 남은 인류를 이끌고 싸우는 지도자로 그려진다. 말하자면 여성을 단순히 어머니로서가 아니고 본인을 역사의 주체로 그리고 있다. 이와 같이 소재는 다르지만 현재 그리고 미래사회의 주인공으로 여성을 그리고 있는 점에서 문화의 흐름을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롭게 느껴졌다.

한편, 무시무시한 그 로봇은 2042년에서 현 시점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으로 설명됐다. 그와 비슷한 시기 그러니까 지금부터 약 30년 후는 미래학자들이 말하는 특이점(singularity, 싱귤래러티)이 오는 때이다. 이 시간이 오면 컴퓨터의 계산능력이 최고조로 발전하여 인간의 지력을 뛰어넘고, 인간은 컴퓨터의 작동방식과 원리를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그때 인간의 역사는 종료되고 지구는 새로운 주인 즉, 기계의 시대가 된다고 주장되고 있다. 이번 터미네이터 영화의 부제가 바로 ‘암울한 운명(dark fate)’이라고 되어 있는데 인간이 기계에 의해서 지배당하고 결국 멸종당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영화나 미래학은 경고적 기능을 한다. ‘역사가 이렇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미리 설명하는 동시에 ‘이런 부분은 좋지 않으니 미리 대비하자’라는 뜻이다. 영화가 그리는 극단적인 결말은 오지 않더라도 기계의 발전으로 호모 사피엔스가 설 땅은 이미 점점 좁아지고 있다. 어떤 분석에 의하면 현재의 직업 가운데 40% 정도가 인공지능을 적용한 기계에 의하여 대체된다고 한다. 그나마 남은 직업군도 대부분 임시직 혹은 단기직이어서 안정된 직장은 많지 않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며칠 전에 LAB2050이 대학로에서 주최한 ‘국민기본소득제 연구결과보고회’에 참석하여 발표를 들어보았다. 이 그룹에서는 소득불평등과 고용의 불안정에 따른 사회의 위기에 대응하여 2021년부터 재정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기본소득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그간 꾸준히 도입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으나 노동 가치를 저해한다는 이유로 반대 목소리도 작지 않았다. 그런데 당시 발표장에 모인 청중의 숫자나 열기를 감안하면 청년층의 관심과 희망이 어디 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인공지능이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듯이 그에 상응하여 사회환경도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그 속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 처지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정책만이 앞으로 지지와 환영을 받을 수 있을 듯하다. 김광수 서강대 로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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