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

가을이 깊어 가면 잎(葉)들은 스스로의 삶을 빛으로 승화시킨다. 이 빛은 삶의 이력처럼 다양한 파장을 갖는데 우리는 이것을 단지 색깔로만 인식한다. 잎이 수명을 다할수록 승화된 빛의 파장은 점점 길어져 초록에서 노랑, 주황, 빨강의 순서로 변해간다. 잎들의 삶이 이처럼 색(色)을 따라 흘러갈 때 우리는 비로소 잎의 색깔이 초록도 아니고 빨강도 아님을 자각한다.

가을의 숲이 울긋불긋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것은 매 잎마다 삶의 이력과 떠나는 순서가 다르기 때문이다. 기쁨과 슬픔, 행복과 고독, 한 시절 잎들의 삶이 빛으로 승화되고 나면, 마지막으로 잎들은 진(津)을 토하며 스러진다. 진은 단(sweet)내를 풍기며 숲속으로 휘발된다. 단내 가득한 가을의 숲, 계곡의 물조차 가을바람에 주름지며 단내를 토한다. 이것을 지각한 우리의 뇌는 어느새 좋은 감정을 느끼며 이 느낌을 좇아 숲으로 다가간다.

우리가 무엇에 다가갈지 아니면 그것을 피할지를 미리 준비하게 하는 것은 긍정 혹은 부정의 자잘한 느낌이다. 이것을 ‘정서적 우선주의(affective primacy)’라고 한다(Wihelm Wundt, 1890). 우리의 뇌가 이 느낌을 평가하는 기준은 그것이 나에게 장차 위협인가 아니면 혜택인가 하는 것이다(조너슨 하이트, 바른 마음, 웅진 지식하우스 2019).

가을의 숲에 단내가 더해지면 산은 더욱 사람들로 붐빈다. 숲으로 다가갈수록 초입부의 부산스러움은 사라지고 부딪히는 표정들은 숲을 닮아 고요하다. 자연과 사람의 경계는 허물어져 사람이 단풍처럼 빛난다. 이는 순전히 촉경생정(觸景生情)의 정서적 반응이지만 이것을 통해 자연과 인간이 함께 빛나는 존재임을 자각한다.

인간의 세포는 단것(glucose)을 바탕으로 신진대사를 수행한다. 생명체가 단것에 반응하는 것은 유전자에 감춰진 생존을 향한 본능이며, 생존에 도움이 되는 그 무엇에 반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가을의 숲은 단내까지 풍기며 생명을 가진 것들을 숲으로 유인한다. 숲의 미립자는 모든 생명체의 몸과 마음에 소생의 원기를 불어넣고 그것을 통해 우리는 다시 내면의 고요를 회복한다. 가을의 숲은 굿(good)이다. 이것이 가을의 숲에서 우리가 느끼는 정서적 반응이다.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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