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논설위원

너의 노오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 아름다움이 세상을 덮으리라던/ 늙은 러시아 문호의 눈망울이 생각난다/ 맑은 바람결에 너는 짐짓/ 네 빛나는 눈썹 두어 개를 떨구기도 하고/ 누군가 깊게 사랑해온 사람들을 위해/ 보도 위에 아름다운 연서를 쓰기도 한다/ 신비로와라 잎사귀마다 적힌/ 누군가의 옛추억들 읽어 가고 있노라면/ 사랑은 우리들의 가슴마저 금빛 추억의 물이 들게 한다……‘은행나무’ 중에서(곽재구)

어제(11일)는 소위 ‘빼빼로 데이’이자 러시아 대문호 도스토옙스키가 태어난 날이었다. 곽재구 시인은 도스토옙스키의 표현을 빌려, 노오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 ‘아름다움이 세상을 덮으리라’고 노래했다.

도스토옙스키는 제2의 삶을 산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1845년 24살때 문단에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4년 뒤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했다가 체포됐다. 그는 기껏해야 유배를 가겠거니 생각했는데 사형을 언도 받았다. 그는 간절하게 기도했다. “만약 신의 가호가 있어 살 수가 있다면 1초라도 낭비하지 않겠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그는 광장에서 총살 직전 기적 같이 되살아났다. 황제의 감형을 받은 것이다.

이맘 때가 되면 도로에는 샛노란 은행잎들이 이리저리 뒹굴며 마치 연서를 보내듯이 옛추억을 끄집어낸다. 마치 노란 아름다움이 세상을 뒤덮을 것처럼.

▲ 두서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64호).

동방에서 건너와 내 정원에 뿌리내린/ 이 나뭇잎엔/ 비밀스런 의미가 담겨 있어/ 그 뜻을 아는 사람을 기쁘게 한다오.// 둘로 나누어진 이 잎은/ 본래 한 몸인가/ 아니면 서로 어우러진 두 존재를/ 우리가 하나로 알고 있는 걸까// 이런 의문에 답을 찾다/ 비로소 참뜻을 알게 되었으니/ 그대 내 노래에서 느끼지 않는가/ 내가 하나이며 또 둘인 것을.…‘은행나무 잎’ 전문(괴테)

지난 1996년 강제규 감독이 만든 영화 ‘은행나무 침대’가 극장가를 휩쓸었던 적이 있다. 1000년전 가야금을 연주하는 궁중악사(한석규)와 공주(심혜진)가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암수 은행나무로 환생, 현세에서 다시 만난다는 내용이다.

은행나무의 고향은 중국이다. 한자로 은행(銀杏)은 ‘은빛 살구’를 의미한다. 열매가 살구를 닮아서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은행나무는 3억5000만년 전 고생대에 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찰스 다윈은 은행나무에 ‘살아 있는 화석(living fossil)’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살아 있는 화석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계절이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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