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채원 울산남부아동보호전문기관 조사팀장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일하면서 만났던 부모들과의 대화 속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 가운데 하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때린다’라는 것이다. 모든 부모들의 자녀를 사랑하는 그 마음은 한 치의 의심도 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랑한다’와 ‘때린다’의 관계를 정당화 할 수 있는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긴다. 어디까지가 ‘사랑의 매’이고 어디부터가 ‘아동학대’에 해당하는지 깊이 고민해 볼 때이다.

정부는 지난 5월23일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발표하면서 민법 제915조에 규정된 친권자의 ‘징계권’의 범위에서 체벌을 제외하는 등 한계를 설정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민법 제 915조(징계권)는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고 법원의 허가를 얻어 감화 또는 교정 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다. 1958년 만들어진 이후 한 번도 개정이 없었던 이 조항은 자녀를 징계할 수 있다고 규정해, 체벌로 자녀를 훈육할 수 있다는 근거로 사용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고 있다.

스웨덴 등 전 세계 56개국이 아이들에 대한 체벌을 금지하고 있다. 최근 일본도 아이의 손발을 묶어 욕조에 가두는 등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하면서 아동학대방지법에 친권자의 자녀 체벌금지를 명기했고, 민법 내 징계권 조항 역시 개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정부의 ‘포용국가 아동정책’ 발표 이후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19세 이상 505명을 대상으로 징계권 개정에 대한 찬반 여론조사 결과는 체벌에 대한 인식의 현주소를 엿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자녀를 가르치다 보면 현실적으로 체벌이 불가피하므로 반대한다’는 반대응답이 47.0%, ‘심각해지고 있는 부모의 아동학대를 근절하기 위해 찬성한다’는 찬성응답이 44.3%로 팽팽하게 엇갈렸다. 수많은 인터넷 기사 댓글에서도 ‘반대한다’와 ‘찬성한다’는 사람들이 나눠져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문제는 아동학대와 부모와의 연관성이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발표한 ‘2018 아동학대 주요통계’를 보면 아동학대 사례 발생장소 중 80.3%가 가정 내에서 발생했으며, 학대행위자 중 부모에 의한 학대 발생이 76.9%로 확인됐다. 학대 발생사유의 대부분은 ‘양육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다.

사실 우리는 아동을 어떻게 훈육하고 양육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부모가 된다. 그러다 보니 아동이 문제 행동을 하면 빠르게 소거시키는 방법으로 체벌을 택하기 쉽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훈육은 필요하다. 훈육은 아이들이 도덕적 가치와 갈등을 건설적으로 해소하는 방법, 다른 사람들과 공감하고 어울리는 방법, 살면서 겪는 어려움에 창의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을 익히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그러나 체벌은 적절한 훈육이 아니다. 체벌은 아이들이 어른의 말을 따르도록 강압적으로 통제하는 수단이며 체벌이라는 행동을 통해 아이는 문제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해도 된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다. 보호자의 의도와 달리 오히려 나쁜 행동과 생각을 가르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실제로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개최한 부모 교육에 참여한 한 학부모는 체벌 이외에 아동들을 양육하는 방법에 대한 교육을 듣고 나서 “아이가 하는 행동이 이해가 안 되서 간혹 엉덩이를 때리기도 했었는데 이유를 이해하고 나니 미안하다”며 앞으로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고 서로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겠다고 했다.

11월19일은 WWSF(여성세계정상기금)가 제정한 ‘세계아동학대 예방의 날’이다. 현명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이제 아이를 소유물로 생각해 행하는 체벌이라는 ‘폭력’을 ‘사랑의 매’로 착각하는 일들을 멈추어야 한다. 진정한 아동학대예방은 아동의 권리를 이해하고 체벌을 근절해나가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윤채원 울산남부아동보호전문기관 조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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