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세련 아동문학가

그림책은 삽화가 곁들여진 동화책이 아니다. 굳이 설명이 없더라도 그림만으로 이해되는 책이다. 이런 책들이 독자층을 넓혀가고 있다. 촘촘한 짜임의 글을 읽어낼 시간적 여유가 없는 현대인들을 위로하는 덕분이다.

<도착>(숀탠, 사계절)은 글자 없는 그림책이다. 분류는 초등어린이용이다. 그렇지만 가족용이라고 해야 마땅하겠다. 그림에는 어떤 설명도 없다. 오래, 사려 깊게 읽어야 한다. 미세한 붓놀림의 흔적, 색의 농도와 명암까지 살펴야 한다. 그렇게 읽노라면 마음에 깊은 울림이 온다. 보편적인 그림책처럼 얇지도 않다. 일반 동화책 수준의 두께다. 페이지마다 흑백으로 느껴지는 그림들이 촘촘하다. 한 페이지가 하나의 그림으로 채워진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만화처럼 칸칸을 채운 그림들이 사건을 잇는다. 완행열차처럼 느리게, 때로는 로켓처럼 빠르게.

흑백 사진들을 빽빽하게 꽂아 둔 앨범을 보는 느낌이다. 인물들의 표정도 밝지 않다. 희망보다는 절망에 찌든 방랑자의 모습이 읽힌다. 독자로 하여금 네모로직을 푸는 것처럼 골똘하게 만드는 모습으로 가족과 헤어지는 아버지. 아쉬운 작별 장면은 회피가 아니란 걸 암시한다. 가난에 찌든 일상을 벗어나려는 희망의 발걸음이다. 주인공이 만나는 사람들 역시 사연을 안은 이들이다. 쓸쓸하고 눅눅한 표정이지만 서로 어깨를 기댄 사람들 사이에서 온정이 읽힌다. 삶의 의지를 갖게 하는 인간미가 느껴진다. 낯선 곳에서 어렵사리 일자리를 얻은 아버지는 가족을 부른다. 열심히 일한 덕분에 단란함을 찾게 된 것이다.

그들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과 같으면서도 다르다. 한 없이 곤궁했지만 인정이 넘쳐났던 시절을 살았던 우리들. 돈벌이를 위해 도시로 떠났던 가장들과 장남장녀들. 그들의 노력 덕분에 오늘날은 경제보복을 시도한 일본을 흔들 정도의 경제력을 갖게 되었다. 배고팠던 시절을 추억하게 되었다. 다만 그 시절의 인정은 그리워하면서 정작 감동은 잊고 사는 것이 안타깝다. 이런 우리 앞에 희망이 도착했다. 각자에게 희망전도사가 되기를 기대하면서. 장세련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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